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한겨울 흰 눈 한 사발, 그 위에 고이 놓인 붉은 팥 한 움큼. 소박하지만 은근한 정이 느껴지는 작은 유기 가득 팥빙수가 담겨 나왔다. 조그만 그릇은 어떻게 보면 발우 같다. 그래서일까, 들여다보노라면 어디선가 산사의 청량한 풍경소리에 선 굵은 목어소리가 화음 맞게 얹혀 들려올 듯 싶다. 살살 흰 얼음 밑을 파헤치다보면 객지를 떠돌던 객이 가슴 깊이 파묻어 놓은 따뜻한 정인 듯 그리운 고향의 냄새, 뜨거운 여름철 얼음 둥둥 띄워 시원하게 마시던 미숫가루의 향취가 혀끝에 물씬 풍겨 나온다.
한국 학교를 주말마다 4년씩이나 다녔다면서도 아직 한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조카 녀석이 이번엔 꼭 먹어보고 싶다고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팥빙수(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음식에 대한 조카의 기대감에 심히 부담을 느낀 고모가 폭풍검색을 하다 보물처럼 발견한, 속초초등학교 후문 코앞에 있는 카페 코아페(속초환경연합이 세 들어 있는 건물 1층). 그곳의 팥빙수는 어린시절의 향수를 향해 마음의 나침반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아주 맛있는 힘이 있다. 조카 역시 눈을 감고 한참을 음미했다.
교육청에서 학교급식 식품위생지도를 맡아 근무했던 공무원 출신 영양사라는 주인장은 아직 기사화될 만큼 내공이 되지 않는다고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같이 일하고 있는 동생은 식품영양학 박사라고 한다. 원래부터 음식 쪽에 관심이 있어 1년간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 다니면서 폐백음식과 떡을 배웠고, 제과기능사,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깜짝 놀랄만한 재원이 내공이 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다니. 매일 팥(국내산)을 삶고 연유를 만들다보니 핸드메이드의 특성상 사람들이 몰려들면 오히려 감당하기 힘들다는 얼핏 어설퍼 보이는 이유도 댄다. 한 10년 정도 더 공부를 하면 그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지 않겠냐고 그 때 기사를 써줬으면 싶단다. 숨은 보물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에 대한 솔직한 체험기를 한 번 써보겠다는 조그만 꿈이 야무진 장인정신 앞에서 살짝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팥빙수는 주변에 마음 놓고 권유해도 될 만큼 정말 맛있었다.
코아페 개점시간은 오전 11시, 폐점은 오후 10시 30분, 매주 월요일은 휴점. 멀리서 보면 공중전화 박스에 가려 카페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주인장의 소소한 일상이 잔잔하게 펼쳐진 블로그(네이버블로그 : 정직하고 솔직하게, 속초 coafe)나 카카오스토리를 읽어보면 메뉴와 이벤트 등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전화 635-1212>.
위나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기에 담겨 나온 카페 코아페의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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