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나는 정부의 해외파견 교장으로 선발되어 2018년 8월부터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으로 3년간의 해외 근무를 시작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인구 8백만의 도시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산업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유수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진출하여, 현재 하노이와 베트남 북부지방에 진출한 한국기업 수는 약 7,000여개에 이른다. 하노이한국국제학교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주재원 자녀를 위해 세운 한국학교로 학생수 2,200명, 교직원 300여명에 이르는 국내·외 최대 규모의 학교이다.
하노이에 근무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더운 기후와 심각한 환경오염이다. 하노이는 4계절이 있지만, 여름에는 기온 40도, 습도 90%, 겨울에는 기온 15~24도 습도는 95%에 이른다. 여름에는 에어컨과 제습기, 겨울에는 난방기와 제습기가 필수인 생활이 3년간 계속되었다. 또 오토바이와 건축현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세계 최악이어서, 평소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생활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1년 반을 보내고 나니, 코로나가 출현했다. 평소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쓰는 습관 때문에 베트남은 코로나 초기 세계 모범국가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1억 인구, 4천만대로 추산되는 오토바이, 열악한 의료시설, 비효율적인 행정체계로 곧 코로나로 신음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다시 1년 반을 견디다 보니 임기가 만료되었다.
하노이에 근무하면서 가끔 속초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명산 설악산과 푸른 동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속초에서 삶이 사실은 큰 축복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저녁마다 산책하던 영랑호 둘레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지인과 담소하던 찻집, 산속 고즈넉한 천년고찰,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청정 공기와 쾌적한 날씨는, 그 자체가 축복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들, 여름에는 짙은 녹음(綠陰), 가을에는 형언할 수 없는 단풍,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속초의 자연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자연환경에 문화가 어우러지는 도시로 거듭나게 하면 어떨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작지만 특징적인 건물, 다시 찾고 싶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늘 볼거리가 있는 거리, 구역마다 다른 건물 도색이나 조명,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연중행사를 운영한다면 속초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귀국 후 3년 만에 다시 속초를 방문했다. 아파트, 자동차, 사람들은 훨씬 많아지고, 설악산, 동해는 그대로인데, 왠지 새롭게 느껴지는 그 무엇은 없어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속초를 세계인이 즐겨 찾고,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득 브라질 ‘쿠리치바(Curitiba)’ 시장을 세 번 역임하면서 효율적인 교통시스템과 친환경적 도시정책으로 꿈의 생태도시를 만든 자이미 레르네르가 쓴 <도시침술>이란 책이 생각난다.
도시침술은 침술이 몸에 최소한의 자극을 주어 건강을 회복시키듯, 도시에도 최소한의 개입으로 효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지 않고,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곳곳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활력을 넣자는 것이다.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 특별한 기억을 담은 공원 벤치, 자전거와 보행자 위주의 거리, 깨끗한 하천과 녹지 등으로도 충분히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서울시 버스전용차선 도입이나 청계천 복원도 이 도시침술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이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겠지만, 더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연과 문화가 결합된 세계적 도시, 속초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최광익
전 설악중학교장·현 화천중·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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