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去不去(한거불거),恨來不來(한래불래)”
갈래도 갈 수 없고 올래도 올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 1980년초 ‘뿌리깊은나무’ 출판사가 펴낸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에서는 속초를 실향민의 도시라며 이 문구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속초이다.
황무지 바닷가에서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삶을 일구어 온 실향민의 삶이 바로 우리나라 최북단 시인 속초시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실향민들의 애환이 스며있는 이곳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처음으로 실향민문화축제를 개최하게 된 것은 정말 뜻 깊은 일이다.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온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이 개막식에 참가하고 함께 함상위령제와 망향제를 지내고, 통일부장관도 자리를 함께 했을 정도로 축제는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받았다.
그러나 처음 열리는 축제라 여러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다. 내년에는 실향민문화축제가 더 나은 모습으로 열리기를 기대한다.
“개최 시기 조정·축제장 확대”
먼저 축제 개최 시기 문제이다. 이번 축제는 6월 24일과 25일 양일간 개최되었다. 시기적으로 장마철이다. 물론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을 상징적으로 잡았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야외행사인 축제를 개최하는 시기로는 적합하지 않다. 내년에는 청명한 계절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 싶다. 전국에서 모인 실향민 어르신들이 축제도 참가하고 속초관광도 즐길 수 있는 날씨 좋은 계절로 축제 기간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축제는 실향민의 참여를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래서 금요일과 토요일 양일간 행사일정을 잡은 것도 전국에서 참여하는 실향민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라고 여겨진다. 축제의 공식 명칭도 제1회 전국 이북실향민문화축제이다. 이북실향민이 축제의 주최이자 대상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축제는 실향민들의 축제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특정 대상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실향민 도시 속초의 시민, 나아가 관광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축제의 대상이 확대되면 그에 따른 프로그램과 진행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아픔만을 상기하는 퍼포먼스도 좋지만, 좀 더 승화한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했으면 싶다. 피난민 행렬 퍼포먼스에서 인민군이 총을 들고 쫓아오는 장면이 섬뜩하다. 실향의 아픔을 과거의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이를 승화시키는 문화예술적 감수성으로 녹여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 반공궐기대회에서 볼 수 있었던 퍼포먼스만으로는 젊은 세대의 관심과 감동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 아직 엄연한 분단의 현실에서 참으로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과거의 아픔을 감싸고 보듬을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행사장의 문제도 개선되어야 한다. 좁은 행사장으로 불편이 컸다. 그럼에도 실향민문화축제는 상징적 공간인 아바이마을에서 개최하는 것은 옳다. 청초호쪽 공간을 개방하고 설악대로 다리 아래쪽까지 축제장을 확장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축제장과 아바이마을이 자연스레 연결되면 좀 더 나을 것이다. 축제장소를 보다 넓은 엑스포장으로 옮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크든 작든 실향민정착촌이라는 공간적 상징성을 지닌 아바이마을에서 축제가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터민들도 축제 참여를”
가족단위 시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아쉽다. 북청사자탈 만들기 체험도 좋고, 청초호 수변공간을 활용한 체험과 이벤트, 문화해설과 함께 하는 아바이마을 탐방 프로그램도 좋다.
축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실향민 음식체험이었다. 아바이순대와 북한 송편, 수수인절미, 이북식 만두인 오랑캐만두. 색다른 음식 맛이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중 오랑캐만두는 처음 선을 보인 이북식 만두. 맛도 좋고 만들기 체험도 재밌다. 우리가 보통 먹는 만두 10개 이상은 합쳐 놓은 듯한 크기에 담백한 야채와 고기를 넣어 쪄내는 오랑캐 만두는 실향민 이북음식으로 첫선을 보였다.
당초 축제에서는 우리가 먹던 함흥냉면의 원조격인 농마국수를 재현해 시식하려 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농마국수는 고구마 전분을 주로 쓰는 지금의 함흥냉면과는 달리 감자의 녹말을 주재료로 만들며 양념도 다르다. 내년에는 실향민문화축제에서 농마국수를 꼭 먹고 싶다.
북청사자놀음과 돈돌나리 공연, 속초지역에서 계승해온 실향민 연희 공연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좀 더 많은 실향민 문화공연가 마련되면 좋겠다.
선상 어선 퍼레이드와 먹거리장터 운영, 이북음식 시식 진행 등에 아바이마을 주민들도 적극 나섰다. 아바이마을 전체 주민이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탈북정착민인 새터민들이 함께 축제에 참여하여 이북 고향의 음식과 문화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서로의 문화적 경험이 다르지만 실향민 문화를 매개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실향민문화축제의 의미는 정말 커질 것이다.
올해는 속초시 자체예산만으로 행사를 진행하느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통일부장관도 찾아온 만큼 내년에는 국가적 관심과 지원으로 실향민 문화축제가 더 풍성하게 치러지면 좋겠다.
첫 축제는 끝났다. 많은 이들의 관심만큼이나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한번 자리를 만들어 여러 평가 의견도 수렴하고 새로운 제안도 받아볼만 하다. 소중히 가꿔나가면 실향민 문화축제가 지역축제의 틀을 넘어 전국 단위의 문화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엄경선 설악닷컴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북청사자놀음 무동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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