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선배! 행복하신가요?
“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경기도 양평 어느 산골짜기입니다. 강원도 곳곳에서 온 서른여섯 명의 소방관이 모였습니다. 강원도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심신치유 프로그램인 ‘THE 행복한 캠프’가 열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제게 전해준 선물이 위의 글귀입니다.
관계자의 캠프 소개에 이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소 서먹한 자기소개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이야기합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 “한 번쯤 이런 기회가 필요했다.”는 사람, “사무실에서 가라고 해서 왔다.”는 사람 등 다들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모였네요.
이어진 행복특강에서 강사님이 묻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요?”
몇몇 참가자가 소심하게 대답합니다. “제 아이가 밝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가져다 줄 때 행복합니다.”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등등 대답이 나옵니다.
강사님이 이야기합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직장에서 상사, 후배, 고객 눈치 보며 스트레스 속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소방관 여러분들은 힘든 현장 활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자녀, 아내, 가족이 먼저입니다. 정작 내가 행복한 일은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내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자녀가, 아내가, 가족이 행복합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은 지금 가장이 없는 집 걱정, 직장에서 나를 대신할 동료 걱정, 사무실의 처리하지 못한 일 걱정 등 머릿속이 복잡하지요? 그렇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 있는 이 순간 나를 위해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모두 잊고 행복을 느끼기 바랍니다.”
참 좋은 말인데요.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저도 무거운 마음을 비우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네요.
저녁 식사 후 6명씩 팀을 나눠 팀별로 자리를 마련합니다. 낮에 했던 스트레스 측정 결과를 놓고 좀 더 깊이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팀 여섯 명의 스트레스 지수는 정말 놀라웠어요. 10점 2명, 9점 3명, 8점 1명. 물론 10점이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점수입니다.
음. 역시! 소방관의 스트레스는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네요. 저는 9점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처음 만난 동료 앞이라 잠시 망설이다가,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놓습니다.
얼마 전 출동한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제일 나이어린 A군, 끔찍했던 교통사고 현장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던 B선배, 자신이 생사를 넘나들던 화재현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던 C군.
그동안 제대로 풀지 못했던 지난 기억에 같이 있던 우리는 서로를 보며, 모두 나와 다르지 않음에 흠칫 놀랍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집에서 잠을 자다 깜짝 놀라 깼었지요. 옆에서 자고 있던 아내도 같이 깨서는 걱정을 합니다.
“나는 괜찮아. 그저 가위에 눌렸을 뿐이야.” 하며 안심을 시키지만 이런 일이 지속됐어요. 털어내 보라는 아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당시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합니다.
소방관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배치된 곳은 2명이 근무하는 지역대로 큰 사건 사고가 많지 않은 곳이다. 어느 날 같이 근무하던 선배가 휴가를 가고 나 혼자 근무하게 됐다. 나름 준비를 하고 근무에 임한다.
늦은 밤.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갑자기 건물 뒤쪽이 훤해진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불빛이 보인다. 100여 미터 거리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난 것이다. 순간, ‘내가 소방관이다.’ ‘저 불은 내 몫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정신없이 소방차에 올라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화세는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소방펌프를 돌린다. 호스를 끌어낸다.
‘내가 이놈과 대결해서 이길 수 있을까?’ ‘화재진압에 실패하면 어쩌지!’ 별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무전기에서는 연신 현장상황을 묻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무전기 잡을 여력도 시간도 없다. ‘어찌 이 순간 나 혼자 이곳에 보내어 졌을까!’ 하늘이 원망스럽다.
귓가에는 “네가 슈퍼맨도 아닌데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하는 천사의 속삭임과, “이건 소방관인 네가 책임져야할 의무야. 이거 못하면 너는 소방관 자격 없어.” 하는 악마의 울림이 동시에 들린다. 사실 어떤 것이 천사의 속삭임이고, 악마의 울림인지도 모른다.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이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곳 의용소방대원 한 명이 달려와 관창을 잡고 소방차에서 나오는 물로 불을 끄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자 지원차량이 속속 도착한다. 우리 차는 이미 물이 바닥났다. 급히 급수지원을 받고 나머지 불을 끈다. 현장을 마무리 짓고 난 후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사히 잘 처리된 화재였어요. 그런데 이 일을 겪고 난 후 밤에 자다가 깨는 일이 잦아져 아내에게 들키게 되었네요.
‘내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일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일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여러 이유를 생각하며 혼자 가슴앓이를 했었지요.
어쩔 수 없이 털어낸 이야기에 아내는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네. 우리남편 맘고생이 많았겠다.”하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일이야.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다가 깨는 일이 사라지더군요.
이때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 쌓아놓은 불편은 ‘병’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이 ‘병’은 바깥으로 내 놓기만 해도 쉽게 치료가 될 수도 있는데, 쌓아두면 결국에는 육체적인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말 못할 사정’이라며 불편을 가슴에 쌓아 놓고 살아갑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요?
허 선배! 그곳에서는 행복하시지요. 같이 있을 최 선배, 김 선배, 차 선배, 황 선배, 그리고 막내……. 모두 그립습니다.
“나, 행복하지 않아.”하며 아내가 제게 투정을 부립니다. “그럼 불행해?” “불행하지는 않은데 행복하지 않아 여보!”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지!”라며 더 이상 투정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릅니다. 만족이라는 통을 가득 채워야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그 통의 크기를 줄여서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후자는 저 같은 보통 사람은 힘들겠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탓하며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며 살아갈 겁니다.
며칠 지나면 6월입니다. 그곳에서는 각종 ‘호국보훈의 달’행사와 추모행렬도 이어지겠지요. 남아있는 우리는 이렇게 잠시나마 선배님들을 추억합니다. 그리고는 일 년을 위안 삼겠지요.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그때는 감히 선배라 부르지 못했는데, 지금 제 모습은 그 때의 허 선배 모습이 되었습니다. 기억속의 허 선배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야속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앞으로는 선배보다 더 늙어 가겠지요.
10년 전 그날, 사람이 삼일밤낮을 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로받아야 할 형수님께서 제 어깨를 다독여 도리어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가족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했던 선배는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었지요. 그 이후로도 차 선배, 황 선배, 막내의 장례를 더 치렀습니다. 막내가 마지막이겠지요? 그러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소방관을 불나방이라 말합니다. 정말 가슴 저미는 말입니다. 불나방은 그 불이 좋아서 불속으로 날아 들어가지만, 우리는 불이 좋아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기에 불나방처럼 뛰어듭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늘이 부르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허 선배와 그곳에 계신 분들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불나방이 됩니다.
허 선배! 옆에 계시다면, 선배도 제게 묻겠지요. “너는 행복하니?” 그럼 이렇게 대답할게요. “그럼요. 당연히 행복합니다. 지금도 그리고 제가 허 선배를 다시 뵐 그때까지 행복할겁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부족함이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는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은 ‘이 순간을 즐기는 내가 행복하고, 가족과 동료가 있는 지금이 행복하고, 내가 소방관으로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나, 행복하지 않아.” 하며 아내가 다시 투정을 부리면 “아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까?” 하며 받아주겠습니다. 그리고 대화하겠습니다. 그것이 불필요한 생산성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아내와의 대화 그 자체가 행복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것이 아내가 바라는 소소한 행복이었을 것이라 느껴지니 너무 미안해집니다.
그동안 큰 것들을 좇느라 작은 부분들을 놓쳤습니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이 됨을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사실을 이제야 느끼네요.
허 선배! 10년 전 그 여름은 제가 행복하지 않았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뵐 그때까지 행복하겠습니다.
2016. 5. 25. 김소양 올림
김소양 / 속초소방서 설악119안전센터(지방소방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