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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속초의 미래상이 궁금하다
등록날짜 [ 2021년09월13일 11시19분 ]

지난 7월초부터 노학동 서울시 공무원 수련원에 설치·운영되고 있는 코로나 환자 격리시설인 속초생활치료센터에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보름동안 의료, 경찰, 소방, 방역요원들 지원을 위해 도청 직원 네 명과 함께 지원단장으로 근무했다. 다들 고향이 강원도인지라 속초에서의 생활이나 여행이 자연스럽게 화두로 떠오르면서 퇴직 후 정착할 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퇴직이 4년 정도 남은 직원 한 명이 “난, 속초보다 고성이 좋아. 속초는 옛날과 달라 시끄럽고 어수선해. 고성은 아직 조용하고 자연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어. 고성에다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순간, 피서철만 되면 되풀이되는 교통체증과 4계절 내내 아파트 공사 중인 현재, 그리고 쓰레기 처리와 식수문제라는 미래가 한순간에 클로즈업 되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화제를 좀 바꿔 보자. 문화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야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답은 의외로 자연이다. 자연에 인간의 땀과 노력, 그리고 이기심이 섞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문화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구분했는데, 현재 등록되어 있는 문화유산이 850개, 자연유산이 213개인데 비해 복합유산은 41개에 불과하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의 기준으로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자연유산의 기준으로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 복합유산의 기준으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경우 등 각 유형별 기준을 설정해 놓고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유산을 찾아내고 있다. 페루의 마추픽추는 해발 2400m의 험준한 산맥 정상에 만들어져 1만 명이나 되는 잉카인들이 살던 요새도시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지금까지도 잘 보전돼 오고 있다. 중국의 태산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성지인데 7000여 개의 계단이 자연경관을 훼손시키지 않고 절묘하게 어우러져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온 곳이다. 두 곳 모두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 온 복합유산이다. 유네스코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갈라놓고 복합유산을 으뜸으로 쳐주는 저의를 알 것 같다. 한국에는 석굴암과 불국사, 창경궁, 종묘, 수원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해인사 장경판전 등 13개의 문화유산과, 한국의 갯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자연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아직 복합유산은 없다. 문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복합유산이 희귀하고 소중하다. 

“개발과 보존,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다시 속초로 돌아가 현실을 들여다보자.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고층아파트는 태백산맥이 빚어놓은 설악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는 스카이라인을 훼손해 버렸고, 해변을 따라 늘어선 인간의 욕망이 분출한 고층상가건물은 수평선 라인을 망가뜨려 도심에서도 오징어 배의 불빛을 바라볼 수 있었던 아득한 옛 추억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동서고속화철도에 올라타 수도권에서 밀물처럼 몰려올 수많은 이방인들의 광란의 문화생활이 왜 걱정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고야 만 것이다. 
개발과 보존은 이득을 보는 한쪽과 손해를 보는 또 다른 한쪽이 있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관광도시로서 자연경관을 잘 보존해야하는 한 축과, 관광객을 유입시켜 지역 소득을 올리기 위해 개발을 해야 하는 또 다른 한 축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이 중요시되는 요즈음 이 두 축의 절묘한 조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보존을 위해 개발이 조금 양보하고, 개발을 위해 보존이 조금 양보하는 신의 한 수 말이다. 
그렇게 자연과 문화,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속초를 복합유산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 두 축이 평행선을 달리며 상대측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요즈음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기존 원주민이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오르는 땅값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내쫓기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도시계획 관련 학문에서 논리로 정립된 지 이미 오래전이다. 원주민이 떠나고 그 빈자리를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이방인들의 놀이터가 차지한다면 미래의 속초가 인구 수십만, 수백만의 공룡도시, 풍요와 향락이 넘쳐나는 대도시로 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청객 이방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잔치상에서 조금만 놀다가 때가 되면 인근 양양이나 고성으로 꺼져주면 안 되겠니?”라고. 이렇게 정해져 있는 미래를 우리 옛 조상들은 하늘에서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실까?

서울다운 속초보다, 속초다운 속초
10여 년 전 일본 유학 시절 가족들과 함께 할 여행지를 찾았던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가 도쿄의 디즈니랜드나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보다 후릿그물로 멸치를 잡는 장사동 같은 어촌마을, 고사리나물을 맛있게 무쳐내는 도문동, 노학동과 같은 산촌마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를 담아 낼 수 있는 메주 마을 장천과 같은 자연도시를 단연 으뜸으로 쳐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천혜의 4계절 관광도시인 내 고향 속초를 생각할 때 마다 자연이 미래의 경쟁력이라고 확신했던 일본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심장 박동을 크게 요동치게 하곤 한다. 
나는 속초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복합유산 후보 도시로 훌쩍 성숙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 속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공존하는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모습을 그려 보곤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이 무참히 짓밟힌 문화도시 속초보다는 문화가 조금 양보하여 잘 보존된 자연도시 속초를 원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의 희망일까? 극단적인 이분법적 표현을 빌리자면 보다 많은 속초시민들이 문화인이기보다는 자연인으로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과 바다, 호수와 온천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속초는 자연의 도시로 영원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이 허락한 천혜의 관광도시 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화로 곱게 단장된 서울다운 속초보다는 자연그대로 조금은 투박하지만 맨얼굴의 속초다운 속초가 앞으로 더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속초는 속초다워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김성림
강원도청 청년어르신일자리과장
전 행정안전부 상훈총괄팀장·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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