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은 놀랍다. 처서가 지나고 나니 헉헉거릴 정도로 뜨겁고 습하던 더위도 어김없이 물러가고 있다. 어느새 바람은 선선해지고 모내기한 지 엊그제 같던 벼들은 알곡을 주렁주렁 달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요즘 해질 무렵이 되면 살면서 수십 년 반복되었던 그 익숙한 가을 냄새가 주변에 그렁그렁 넘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일 테고, 그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는 또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고 때론 놀라기도 하고 때론 무심히 넘어가기도 하면서 잊혀져간다.
요즘 종종 보고 있는 모 드라마에서 나온 한 장면이 떠오른다. 헤어진 연인과 우연히 같은 버스에 타게 된 주인공이 먼저 버스에 탑승한 후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나중에 탑승해서 지나가고 있던 옛 연인의 향취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바라보던 장면이다. 냄새가 주는 기억의 환기 작용이랄까? 그 냄새가 주는 기억은 지속력이 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적 엄마 냄새, 아기의 살 냄새, 고소한 빵 냄새, 아카시아 꽃 냄새 등등 각자 개인별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냄새들은 다양할 것이다. 또 만약 그 냄새를 그릴 수 있다면 그 당시 상황들을 곁들여서 아마도 세세하게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기억나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끔씩 사용되는 말 중에는 ‘냄새를 풍기다’라는 말이 있다. 별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 말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잘못된 내용이거나 악의를 품은 내용을 퍼트릴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풍문을 만들어서 구전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으나 요즘에는 기존의 신문, 방송 같은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SNS, 유튜브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최근 3년 연속 아시아 1위이며 전 세계 180개국 중 42위라고 한다. 미국이 45위이고 일본이 66위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꽤 높은 상위권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Reuters Institute’라는 곳에서 매년 발표하는 언론신뢰도 조사에서는 우리나라가 조사대상국 40개국 중에서 꼴찌이다. 참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 시절에는 입만 잘못 뻥끗해도 바로 감옥행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의견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다양한 경로로 표출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일 것이다. 악의적으로 또는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퍼트리는 가짜뉴스들이 횡행하고 있는 요즘에는, 우리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수없이 핍박받고 피흘려왔던 참 언론인들의 삶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최근에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을 비롯한 기타 여러 매체를 통해서 알려지는 내용들은 실체와 다른 경우도 많다. 각각의 사안들을 실체와 다르게 침소봉대 하거나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천착하게 되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유튜브 이용률이 급등하고 있는데, 하나의 검색어를 치면 자체 알고리즘에 의해서 접속자가 검색한 영상뿐만 아니라 그것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상, 자주 접속했던 영상들과 관계있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걸 그대로 전부 다 보게 된다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확증편향에 걸리기 딱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추 생각해보면 요즘 보도되거나 풍문으로 도는 많은 사건들의 실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와는 다를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의도적으로 오보를 내거나 실제와는 다른 사안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악의적으로 퍼트리는 경우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우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들 중에 실체와 다른 남의 험담을 다양한 경로로 퍼트리는 일도 포함해서 말이다.
가을이 되면서 느끼는 이 가을 냄새는 해마다 느끼지만 늘 좋다. 그래서 이 좋은 계절에는 나쁜 냄새를 풍기는 일들이 줄어들고 국화 향처럼 은은하고 향기로운 냄새들만 가득한 이 가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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