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강원 고성, 노령화지수 최고 …고독한
노인들만 남아
② 고령사회 가속화로 나타나는 현상과
노인복지 실태
③ 원주시 노인생협 공동체를 찾아
④ 독거노인 생활공동체로 외로움을 달래고
고독사 예방
⑤ 노인들의 손맛으로 일궈 낸 마을기업,
일본의 전통만두 공장 ‘오가와노쇼’
⑥ 일본, 지역포괄지원센터로 노인들의
건강한 노후 삶 영위
⑦ 고령화에 따른 지역 역할 찾기 방안
원주시는 강원도 내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지난해말 기준 원주시 인구는 33만2,995명으로, 고령인구(4만1,104명) 비율은 12.3%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미래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노인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노인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06년 창립한 전국 최초 노인생협
원주노인생협은 우리나라 최초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자조자립 협동조직으로 2006년 9월 설립됐다.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와 용돈을 스스로 해결하고, 외로움 해소와 건강관리 등을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지난 2001년 원주한살림, 원주생활협동조합, 의료생활협동조합준비위원회 관계자 등이 일본의 민간사회단체와 소비자협동조합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것이 노인생협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일자리 정책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닥칠 노인문제의 실상을 깨닫게 된 것이다.
30명(원주생협 발기인)이 낸 출자금으로 ‘늙음은 어쩔 수 없지만, 협동은 건강한 노년을 만든다’는 슬로건으로 창립한 노인생협의 조합원은 지난 5월말 현재 1,500여명에 달한다.
원주노인생협 최종남(57) 사무국장은 “조합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지만, 일자리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60세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조합원 가운데 90%가 60세 이상이며, 이중 일자리를 희망하는 노인은 약 50%에 달한다”고 말했다.
원주생협 운영 초기에는 노인들에게 선뜻 제공되는 일자리가 없었다.
권용원(68) 원주노인생협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만들었는데 6개월간은 들어오는 일자리가 전혀 없었다”며 “이 때문에 조합 운영비와 인건비 등으로 설립자금 3,000만원이 거의 바닥나 조합 운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위태로웠다”고 했다.
고육지책으로 지난 2007년 3월 보건복지부에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택배와 대리운전사업을 신청해 지원을 받게 됐지만 노인들이 감당할 사업이 아니었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소포는 아예 받지를 못했고, 적은 배달료를 받는 서류나 간단한 물품 배달은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탓에 신속성에 문제가 있었고 버스비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수익도 극히 적었다. 또 술에 취한 젊은이를 상대로 대리운전하는 것도 노인들에게는 힘에 버거웠다. 이 사업은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아야만 했다.
자회사 ‘노인생협경비’ 설립
노인생협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것은 2007년 4월 정부에서 추진한 ‘깨끗한 학교만들기사업’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 사업은 전국 자활사업단이 추진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원주자활사업단이 인력 부족으로 원주 관내 40개의 학교를 관리를 할 수 없게 되자, 노인생협이 이 일을 대부분 위탁받게 됐다. 60여명의 노인들이 참여해 지역 초·중·고등학교 및 시내 뒷골목 청소사업을 꾸준히 맡아 진행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 2008년 10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 학교 청소 외에 원주시로부터 공원과 이면도로 청소, 도심지 골목 방역 등의 일을 위탁받으며 노인 일자리를 넓혀나갔다. 여기에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가 노인채용급여 50%를 지원하는 시니어인턴십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사업에 선정된 노인생협의 조합원들은 경비용역, 대형 폐기물 수거, 주유소, 식당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일자리를 제공받게 됐다.
월급은 업무 난이도와 근무시간에 따라 40만원~120만원 수준이다.
노인들이 성실하게 일을 하니 일을 맡기는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만족해하고 일자리 규모도 늘어나 지난 2013년 한해 최대 300여명의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노인생협은 앞으로 상조회, 요양보호사파견사업단, 냉난방기 관리 등 사업분야를 확장해 보다 많은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노인생협은 노인들의 손맛을 활용해 음식점을 열기도 했다. 지난 2010년 5월 조합원 출자금 3,500여만원을 투자해 노인생협 건물에 ‘만남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점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밥을 주로 판매하다, ‘착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이 배를 채우고 쉬어가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주 메뉴를 15종류의 국수(3000원)로 변경했다.
여름철에는 이벤트로 반계탕을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한다. 형편이 어려운 조합원의 회갑연, 생일파티 등도 열어 준다. 직원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간제 근무자를 채용해 부족한 노인일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 현재(6월 13일부터)는 내부수리로 휴업 중이다.
노인생협은 2011년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자회사인 ‘노인생협경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경비원은 아파트, 학교, 빌딩 등에서 수요가 많은 편이며, 노인 일자리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초기에는 경비원 일자리가 적었지만, 현재는 전문 경비업체 요건을 갖추고 관리 및 교육을 진행해 경비사업과 관련한 조달청 입찰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학교 숙직경비부터 학교 지키미, 아파트 경비, 건물 방역 및 소독 등 시설물 관리에 투입되는 인원이 현재 56명에 달한다.
노인생협경비(주)는 설립 1년 뒤인 2012년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9월 사회적기업으로 승격돼 올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별도의 법인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한해 동안 120여명의 노인 조합원들이 노인생협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다. 한때는 한 해 300여명에 달할 정도로 노인일자리 사업이 활발했지만, 점차 일반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장 점유율과 일자리 수가 점차 줄고 있는 추세라, 이를 극복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노인생협은 한 달에 한 번 거리청소 봉사활동을 하고 직무 소양교육을 받는다. 야유회, 합창단 운영 등 노인들의 여가활동도 제공하고 있다.
최종남 사무국장은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해 다음 세대들이 아름답고 건실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노인들의 몫이다”고 했다.
이용수 기자 ellan9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원주노인생협 조합원들이 원주시로부터 공원 등 청소용역을 맡아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도심 속에 방치된 대형폐기물 수거작업에 나서고 있는 원주노인생협 조합원들.
■인터뷰 / 권용원 원주노인생협 이사장
“노인생협 네트워크 형성되길 바라”
권용원 원주노인생협 이사장은 “창립 후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연간 수입이 11억1,800만원에 달하지만 노인들에게 건강한 일자리 제공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며 “노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협동조합으로 발전하려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전국에서 제2, 제3의 노인생협이 만들어져 노인일자리 사업에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를 바라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그 만큼 노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심이 부족하다”고 했다.
권 이사장은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맹목적인 복지정책보다 노인들이 뭘 원하고 바라는지를 지역사회가 먼저 인지하고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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