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은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었고, 민청련 사건이 터졌어요. 독재가 시작되었는데 독재라고 말도 못하는 내가 너무 불쌍했어요. 고작 한다는 게 이런 시가 나왔죠. 불온한 기운만 가득한 작품이에요.”
이상국 시인이 그의 문단 데뷔작인 ‘겨울 抽象化’를 설명한 내용이다. 모더니즘 계열의 이 작품은 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성찰의 언어로 그려온 기존의 작품과 다르다. 독재 시대를 사는 시인의 불온한 마음을 ‘피카소’의 추상화 같은 시각으로 드러냈음을 고백했다. 동료시인 박종헌은 ‘겨울 抽象化’가 실린 제1시집 <동해별곡>은 시대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으면서 정말 온몸으로 시를 썼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가족, 농촌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
지난 6월 29일 속초민예총 문학협회가 문화공간 다랑에서 개최한 ‘이상국 시인 출판기념회’는 등단 40년이 된 이상국 시인의 시세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부는 이상국 시인의 오랜 동료로 강원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종헌 시인이 7권의 시집을 연보식으로 설명하며 시세계를 설명했다. 박종헌 시인은 제1시집 <동해별곡>(1985)의 특징이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통해 치열한 열정을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제2시집 <내일로 가는 소>(1989)는 지역성에 기반한 시대의식이 특징이다. 특히 지역 고유의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소’와 ‘청호동’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제3시집 <우리는 읍으로 간다>(1992)는 여전히 남아 있는 군사독재의 그림자를 농촌의 현실로 은유하는 시인 특유의 서정이 더욱 깊어졌음을 말했다. 강원민예총 설립 과정에서 기존 단체와 갈등을 겪으며 힘들었던 이야기도 곁들였다. 제4시집 <집은 따뜻하다>(1998)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禪林院址에 가서’가 있는 시집이다. 박 시인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내면의 성찰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능력에 대해 부러움을 전했다. 또한, 이 시집 이후 짧고 간결한 시세계가 이상국 시인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 제5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2005)는 시인 특유의 시세계가 더욱 확고해진 작품집으로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라고 말했다. 농촌의 삶을 묘사한 서정적 리얼리즘은 더욱 견고해지고 불교적 사유가 이상국 특유의 담백한 언어로 표현되며 새로운 선적인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상국 시인이 당시 만해마을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이력이 불교적 세계의 이유로 설명되었다. 제6시집 <뿔을 적시며>에서는 가족관계나 농촌의 풍경이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시는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박종헌 시인은 이상국 시인의 전 작품에서 드러나는 가족, 농촌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결국 그의 ‘시 전부’임을 이야기한다. 제7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의 그 ‘달’이 결국 이런 정서의 연장 아니겠냐고 설명하며 총 7권에 달하는 시집의 여정을 마쳤다.
시인이 7개 시집서 1편씩 뽑아
2부에서는 이상국 시인이 7권의 시집에서 각각 한편씩 시를 선정하였다. 선정한 작품은 시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당대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시에 얽힌 속사정도 재미와 감동을 담았다. 제2시집의 ‘머나먼 정선 함씨’는 정선에서 양양으로 시집와 마흔에 시인을 낳은 어머니를 노래한 작품이다. 내면을 노래하는 시인의 ‘끼’가 밭일 하며 노래 잘하고, 술 잘 마시던 어머니에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는 것. 하지만 어머니를 궁금해 할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기에 시로 남겼다고 한다. 제4시집은 발간 10년만에 2쇄를 인쇄하겠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10년 후에 재고가 떨어질 때까지 전국을 떠돌아다녔을 자신의 작품을 생각하니 “내 시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시인의 자조적 표현은 시가 외면받는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제5시집은 시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는 작품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시배달’을 통해 소개되면서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상국 시인은 상복도 많은 시인이다. 하지만 본인은 정작 수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백석문학상’과 ‘박재삼 문학상’만은 각별하다. 이 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문학상을 둘러싼 ‘관계’에서 그 자신이 벗어난 상태에서 받은 상이이기에 소중하다는 이야기였다.
시인은 올해 고희라고 한다. 친정격인 민예총의 환대가 고맙다고 한다. 시인의 문학고갱이는 아직도 지평을 넓히는 중이다. 씌여지지 않은 시편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가늠할 수 없다. 이상국 시인이 그리워하는 理想國은 허기 가득한 그리움이 낮고 따뜻한 사람들을 향하는 서정의 언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언어가 그의 시 속에서 위안을 주고 성찰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그의 새로운 시집이 벌써 그리워진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문화공간 다랑에서 개최한 출판기념회는 시인이 직접 고른 시에 대한 해설과 시낭송이 어우러졌다.
이상국 시인이 최근 일곱 번째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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