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 속초시근로자복지회관에서 강원민주재단(이사장 최윤) 주최로 “국가폭력의 상처와 치유-동해안 납북귀환어부 인권유린·간첩조작사건” 토론회가 열렸다. 변상철 평화박물관 연구위원과 엄경선 설악신문 전문기자의 발제와 김아람 한림대 교수의 토론, 김성학·김창권 두 사람의 피해자 증언이 있었다.
발제자 변상철은 진실화해위원회 1기 조사관을 지냈으며, 지금까지 납북귀환어부 재심 및 구제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발제자 엄경선은 2008년 이후 납북피해자 사례를 취재해 <설악신문>에 게재해 왔다. 이번 토론회는 <설악신문사>가 후원했다.
- 진실화해위원회와 사전 간담회
이날 토론회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재승 상임위원, 이상희 위원, 김민재 기획운영관 등 8명이 참석해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신청을 안내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토론회에 앞서 진실화해위원회는 고성군수와 양양군수를 방문하여 국가폭력 진실규명 신청에 일선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요청했다. 이날 사전 간담회에서도 속초와 고성지역 피해자와 가족이 나와 억울한 사연을 토로했다.
“언론에서는 우리가 납북되었다고 발표했지만, 돌아와서는 정작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모두 공모해서 자진월북했다고 처벌받았다. 국가가 16세 어린 소년에게 수산업법, 반공법,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게 타당한지 묻고 싶다.”(속초 노학동 김모씨)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는 서해안 조기잡이를 갔다가 인천 북부경찰서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접선장소가 어디냐 암호가 뭐냐고 캐묻고, 잠도 안 재우고 2, 3개월 고문을 받았다. 결국 아무 것도 나오지 않으니 국가보안법 고무찬양죄로 기소되어 1년6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정권이 바뀔 때까지 1주일마다 경찰서에 가서 거동을 신고해야 했다.”(고성군 아야진 김모씨)
- 발제 1 : 변상철(평화박물관 연구위원)
지난 2009년 상반기에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 재판에 회부된 납북귀환어부 1,028명(본적지 속초 218명, 고성 313명, 양양 9명, 강릉 78명, 동해 61명, 삼척 1명 포함)의 명단을 확보해 이중에서 최종적으로 인적사항이 확인되는 660명을 대상으로 피해기초사실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대상 피해자 660명 중 강원도가 445명으로 2/3에 해당된다. 시군별로는 속초시 216명, 양양군 3명, 고성군 74명, 강릉시 84명, 동해시 68명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원으로 활동하면서 납북귀환어부 중 김용운(고성), 안정호(고성), 윤질규(고성), 김영수(속초), 김용태(강릉 주문진) 등 피해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지금까지 납북귀환어부 피해와 관련해 총 34건이 재심이 받아들여 무죄로 선고되었다. 이중 진실화해위 조사가 이뤄진 경우는 총 16건이며, 진실규명 없이 바로 재심을 신청해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18건에 해당한다.
1968년 10월 30일과 11월 9일 고성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규모 어선 피납사건과 관련해 경찰문서를 보면 고성경찰서는 납치된 어부들이 월선조업이나 북한해상으로 탈출하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을 조작해 1969년에 귀환한 납북어부들을 반공법(탈출죄), 국가보안법(자격정지), 수산업법 등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받도록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1기 때는 귀환납북어부 피해자 대부분이 위원회 존재를 잘 몰라서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금 시작되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 신청건만 조사를 할 것이 아니라, 빠른 시일 내에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전면적인 직권조사를 실시해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발제 2 : 엄경선(설악신문 전문기자)
동해안 납북어부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례로 고성 강석돌(거진), 장득필(거진), 김무경(거진), 김수성(아야진), 강종배(가진), 속초 최견식, 강릉 황원식 등이 있다.
지난 2007년 10월에 발효되어 3년 한시법으로 시행된 납북피해자 보상 및 지원법은 미귀환 납북어부 가족 위로금과 탈북귀환어부의 정착금 지급 이외에 납북귀환어부의 피해 구제는 거의 진행된 바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의 개선책도 통일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신청건 10건과 2010년 5월 직권조사를 결정한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7건을 조사해 재심을 권고했으나, 전체 납북귀환어부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다. 직권조사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건에는 속초의 이성국, 강경하, 고성 윤질규 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별개로 고성 안정호, 박우용, 속초 김춘삼, 김봉호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속초·고성을 비롯해 강원도 동해안에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피해 귀환납북어부만 수백 명에 이른다. 특히 남북적십자회담이 진행되던 1972년 9월에 귀환한 납북어부 261명 중 259명이 한꺼번에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 선원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혔고 평생을 공안사범의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이때 처벌받은 선원 중 일부는 다시 간첩조작사건으로 2차 피해를 입었다.
납북귀환어부 국가폭력은 국가 정체성 확립과 국민 인권보호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보다 쉬운 피해자 구제방안을 마련하고 납북귀환어부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야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증언
피해자 증언에 나선 김성학씨는 1971년 8월 승해호에 선장인 부친과 함께 승선했다가 납북되어 1년 8일 만인 1972년 9월 7일 귀환했다. 납북귀환어부라는 이유로 군 복무 후에 다시 HID에 가서 1년간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으며, 그 신분 때문에 항상 감시에 시달려 정상적인 직장생활도 어려웠다.
1985년 경기도 하남에서 전파사를 차렸는데 3개월만인 12월 경기도경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경찰 이근안에게 72일 동안 전기고문을 비롯해 온갖 고문을 받았다. 간첩으로 조작되어 기소되었으나 다행히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989년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만인 1998년에 법원이 고문경찰 이근안에 대한 고소사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이근안이 구속되었다. 토론회에서 김성학씨는 당시 고문을 받았던 상황을 생생하게 진술했다.
“우리 같은 귀환어부들은 당시 공안당국의 사냥감이었다. 그렇게 희생당해서 내 삶은 완전히 끝이 났다. 억울하게 북한에 끌려가 고생하다가 돌아왔는데도 국가가 도움은커녕 간첩 올가미를 씌워 갖은 고문을 다했다. 이제는 국가가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제대로 보상해 줘야한다.”
이어 김창권 씨가 두번째 증언자로 나섰다. 김창권씨 부친 김봉호씨는 1971년 5월 창동호 선장으로 북에 피랍되어 다음해인 1972년 5월 9일 귀환했다. 피랍과정에서 선원 1명이 사망했고 선원 5명이 돌아왔다. 당시 경찰은 창동호가 고의적으로 어로한계선을 넘어갔다고 조작해 선원 5명 모두 실형을 살게 했다.
“선장을 지낸 부친이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는 410일 동안 구속되었다. 고문을 받아 다들 정신이상자가 되었고, 선원 한 명은 귀도 멀고 말도 못하게 되었다. 몸이 다 망가져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 피해자들에게 희망 주는 재심 무죄판결
이날 피해자 증언에 나선 김창권씨와 선원 가족 4명은 2014년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 창동호 김봉호씨 사건에 대해 재심을 신청했다. 6년 동안 재심사유를 보완한 끝에 지난해 10월 재심이 개시되어 12월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항소 포기로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아 피해자 가족들은 형사보상금을 수령했으며,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속초 창동호 선원 재심 무죄판결은 납북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려 처벌받은 1차 피해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이라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지금까지 개별적인 2차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재심 무죄판결이 있었는데,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1차 피해에 대해서도 비록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처음으로 재심 무죄판결이 나온 것이다. 수백 명에 이르는 동해안 귀환납북어부 피해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재심 판결이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보면, 진실화해위원회 2기 활동 개시뿐만 아니라 납북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 등에 힘입어 지역의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문제해결도 한 걸음 크게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지난 6월 25일 속초시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 인권유린·간첩조작사건 토론회’에서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들이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신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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