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김치볶음밥에 삼겹살 꼬치를 얹은 한 끼를 먹는다면, 과연 그 맛과 기분은 어떨까?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는 로망이나 마찬가지인 힐링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양양비치마켓이다.
상상만 해도 소풍을 나오듯 즐거운 이곳에서 입맛도 저절로 당기는 ‘퓨전 메뉴’를 개발해 설악권 브랜드로 완성해 키워나가는 주인공, ‘껍데기랑 알맹이네’의 진행경(52)·박정준(52) 동갑내기 부부는 마켓 전문셀러로 활동하고 있다.
4년 전 양양비치마켓 창립멤버로 첫 셀러활동을 시작한 부부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매월 강현면 설악해변에서 열리는 비치마켓 지역셀러로 참여하며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 맛과 멋이 곁들여진 김치볶음밥과 삼겹살 꼬치를 인기 메뉴로 내놓고 있다.
비치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200인분이 완판될 정도인 이 메뉴는 최근 서퍼들의 간편식 한 끼 점심으로 각광받고 있고, 전국적으로도 설악권에 가면 전통과 현대의 맛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인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부부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가득한 이 퓨전 메뉴는 양양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와 정성스럽게 담은 국산 토종 김치에 국내산 쌀과 엄선한 삼겹살로만 조합을 이뤄내 맛과 영양 모두 만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흔히 말하는 로컬푸드에 슬로푸드를 적용한 ‘야외 전용 K푸드’가 바로 부부가 만들어내는 김치볶음밥에 삼겹살 꼬치를 얹은 퓨전 메뉴다.
직접 지은 재료로 한 끼 식사 완성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의 이 메뉴를 확실하게 자신들만의 주력 상품으로 내놓기까지는 부부의 정직한 마음과 정성, 그리고 인내가 자리하고 있다.
양양이 고향인 부부는 속초에서 송월타월을 운영하며 주말이면 직접 밭농사도 짓고, 저녁이면 양양읍에서 동생이 하는 구들돌 삼겹살을 거들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지역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비치마켓에 우리 지역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2017년 당시 물치비치마켓의 지역셀러이자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표고버섯이나 고사리, 두릅 등 양양산 농산물 위주로 판매하던 부부는 ‘비치마켓의 요소를 더욱 살찌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구들돌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나서 만드는 김치볶음밥에 다들 만족한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메뉴 개발에 들어갔다.
진행경 셀러는 어디에 내놔도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이 맛과 품질에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비치마켓만의 특성을 감안해 평소보다 더 열정과 신중을 기했다. 시댁이 있는 서면 장승1리의 텃밭에서 배추를 직접 키우고 수확한 후 갖은양념을 버무려 양양산 토종 김치를 만들었고, 친환경 양양해뜨미 쌀과 지역산 삼겹쌀까지 엄선해 퓨전 메뉴로 안정화시켜 나갔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에는 김치볶음밥만 단일 메뉴로 개발하면서 누구나 흔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메뉴여서 딱히, 차별화되지 못했고,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든든한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삼겹살 꼬치를 얹으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고 고기를 추가하자, 맛은 물론 가성비도 덩달아 높아져 비치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메뉴만을 먹기 위해 비치마켓을 찾는 방문객들도 크게 늘었고, 현남면 인구와 죽도를 거점으로 하는 서퍼들도 다소 먼 거리에도 주말이면 비치마켓이 열리는 설악해변에서 서핑을 즐기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고 있을 정도다.
유럽 한 달 살기 광장마켓 배워 적용
늘 자연과 벗하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부부는 지역을 찾는 고객들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면, 가족에게 차리는 밥상과 늘 같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메뉴에 넣을 재료를 직접 키우면서 정성을 들였고, 멀리서 온 방문객들을 위해 조금 더 넉넉함도 담아냈다. 이렇게 메뉴는 완성됐고 만족도도 높아졌지만 부부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퓨전 메뉴가 글로벌 로컬브랜드를 지향하는 비치마켓의 조화로운 요소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 2019년 광장마켓이 발달한 유럽으로 떠나 현지 분위기와 시스템을 배웠다. 부부는 여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유럽의 광장셀러들은 어떤 생각과 방식으로 시장 음식을 만들어내고 시민들과 소통하는지를 체득하기 위해 체코를 거점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 유럽 각지의 광장 시장을 찾아 한 달 동안 청결과 위생, 판매·소통방식 등을 두루 익혔고 다시 국내로 돌아와 자신들이 내놓는 퓨전 메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맛있고 신선한 재료에 가격까지 착한 메뉴’를 완성하는 것이 바로 부부가 찾던 목표였고, 퓨전 메뉴는 비치마켓은 물론 국내 대표적인 마켓인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의 리버마켓에서도 바로 통하면서 인정받았다. 워낙 재료가 신선하고 알차다 보니, 부부에게 재료를 팔라는 주문도 많아, 수량이 허락하는 범위에서는 제철 재료도 판매하고 있다.
리버마켓과 비치마켓을 쉼 없이 오가면서 부부의 ‘김치볶음밥+삼겹꼬치’는 인기리에 판매되고 오전에 모든 재료가 동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부부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고 가능한 만큼만 판매하며 양양산 로컬푸드를 슬로푸드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
“좋은 재료 함께 나눠 행복”
자신이 짓는 농사는 손가락 농사고 기왕에 짓는 거라면 예쁘게 져서 먹는 사람들 건강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게 진행경 셀러의 철칙이다. 사계절 내내 자신의 농사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일기장처럼 올리는 그는 자기만족보다는 농사정보는 물론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시도를 함께 공유하고 싶고, 시작을 했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게 작은 소망이다.
속초 교동에 위치한 송월타월 가게에도 자신이 직접 지은 고사리, 곤드레, 두릅, 호두, 열무, 마늘, 명이나물 등 다양한 임산물을 내놓고 우리 몸에 좋은 재료를 함께 공유하면서 소통에 나서고 있다.
“제가 좋아서 농사짓고 그 재료로 정성껏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손님들의 얼굴을 보는 게 정말 행복해요. 그럴 때면 음식 만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작은 배려와 나눔이 속 깊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요.”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부부는 누구나 코로나19로 인해 과거의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듯, 속초와 양양을 오가면서 지역산 퓨전 메뉴를 더 알차고 가성비 높은 관광메뉴로 업그레이드시키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주변과 조화롭게 엮어가고 있다.
비 내리는 날, 툇마루에 걸터앉아 자신이 직접 재배한 파로 부침개를 만들 때면, 어릴 적 추억으로 돌아간다는 진행경 셀러는 어쩌면 엄마가 만들어 주던 잊지 못할 그 맛을 찾아내 마켓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부부는 비치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최고의 세프가 되어 메뉴를 만들어내기에 바쁘다.
부부는 비치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최고의 세프가 되어 메뉴를 만들어내기에 바쁘다.
김치볶음밥에 삼겹살 꼬치를 얹은 퓨전 메뉴.
진행경 셀러가 자신이 직접 지은 임산물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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