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하루가 저물어 어두움이 깔리는 시간 먹자골목 식당에 가득한 사람들이 불고기판을 둘러싸고 식도락삼매경에 빠져있는 광경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 들어오면 금방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몹쓸 죽음의 병에 걸릴 것 같이 울부짖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가버렸나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지금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TV방송과 신문, 인터넷, 휴대전화 메시지 등에 홀려 ‘저 아직 열다섯 살밖에 안되었는데 죽기 싫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에 나왔던 소녀들,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데모에 앞장섰던 주부들은 지금도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는 다시 우리 식탁에 오르는 양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서 광우병소동은 머나먼 망각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것 같다. 어느 누구 책임을 묻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반성하는 사람도 없이 그저 잊혀져버렸다.
나는 이 놀라운 집단 망각현상이 어디서 연원해서 온 것인지 나름대로 엉뚱하게 추리해 볼 때가 있다. 나는 해병대 신병훈련소 시절 사열이나 검열 때 상관이 병사를 가리키며 “직속상관 관등성명?”이라거나 또 “M1소총의 유효사거리?” 따위를 묻는 경우(병사들의 교육훈련 상태 점검 목적) “모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절대금기사항이었다. 병사가 모른다고 대답하면 상급자나 지휘관의 책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부하들에게 교육훈련을 재대로 시키지 않았다는 질책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병사가 씩씩하고 늠름하게 “잊었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면 무사통과가 된다. 상급자가 교육을 시켰는데 그만 까먹고 말았다는 뜻이니 윗분들의 책임은 면제되는 것이다. 또한 머리가 나빠서 배운 걸 깜박 잊었다는 걸 가지고 병사를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찌하랴. 윗사람이나 훈련병 모두 책임을 모면할 구실이 되니, “잊었습니다!”는 우리 군대에서 만사형통의 주문(呪文)으로 굳어질 수밖에. 곤란한 처지를 쉽게 넘겨버리고 마는 절묘한 타협책의 망각일 수도 있다.
여소야대 20대 국회가 개원돼 국회에 계류 중인 각종 중요 법안처리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벌써부터 예견되고 있다. 여야 대치 속에 망각의 병이 다시 도져 각종 시위가 잇따를 것이 강 건너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여야가 협력과 협치를 하지 않고 혼란과 시위가 이어진다면 자유도, 민주주의도 없는 생지옥이 올 것이다.
이 깊고 깊은 망각의 병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박명근
전 대한언론인회 복지기금위원장
속초공정사회실천시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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