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고성·양양은 동해안 최북단 해안을 끼고 있다. 그래서 바닷가에 크고 작은 항구가 있고 수산업이 발달했다. 지역에서 관광산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수산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지역말도 이러한 자연·인문 환경을 반영한 바닷가 말이 많다.
우리 고장 수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이 바로 ‘바리’이다. ‘고기잡이’ 또는 ‘조업’을 뜻하는 이 ‘바리’라는 말은 웬만한 종류의 고기잡이에 빠지지 않고 붙었다.
사전에 나오는 강원도 방언 ‘멩태바리’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샘>에는 ‘명태를 잡는 일’이라는 뜻의 강원도 방언으로 ‘멩태바리’가 나온다. 사용 예문으로 “게울철에 어촌에서는 멩태바리가 한창이지”라고 나온다.
명태바리도 다시 그물과 낚시로 잡는 것에 따라 구분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강원도 고성 어로요 ‘명태잡는 소리’를 소개한 장정룡 교수는 낚시로 명태를 잡는 것을 명태연승 또는 ‘주낙바리’(조태·낚시태·낚시연승·낙수바리·연승바리)라 하며, 그물로 명태를 잡는 명태자망을 ‘그물바리’(망태·그물태·망성바리·시망바리·자망바리)라고 했다. 장 교수는 ‘바리’는 ‘짐’을 뜻하는 말로 ‘어로작업’ 일체를 뜻하며, 명태바리는 명태를 잡는 과정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다. 고성 어로요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인 ‘명태잡는 소리’는 처음 발굴해서 공연할 때는 ‘명태바리소리’라고 불렀다.
명태가 많이 나던 시절에는 지역에서 멩태바리, 낙수바리, 시망바리, 망선(망성)바리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명태바리를 시기적으로 구분해서 음력 10월부터 동지·섣달에 잡는 ‘동태바리’, 설이 지나서 잡는 ‘춘태바리’로 다시 구분하기도 했다. 지금 동해안에서 명태가 나지 않지만, 서울에는 ‘명태바리’라는 상호의 명태요리 전문점도 찾아볼 수 있다.
오징어잡이는 ‘오징어바리’ 또는 ‘이까바리’라고 했다. 이까는 오징어의 일본말이다. 지역 출신 이상국 시인의 글 ‘청호동 부재의 밤’에는 “몇차례씩 오징어바리 나간 아바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떼과부들이 생기고, 그들 또한 아바이들처럼 억세게 그들 운명과 삶을 리어커처럼 끌던 곳 집집마다 걸리던 오징어와 억센 사투리”라고 나온다.
명태와 오징어뿐이 아니다. 물고기 이름에 바리를 붙이면 조업이름이 된다. 멸치바리, 문어바리, 청어바리, 꽁치바리, 양미리바리, 대구바리, 뽁쟁이(복어)바리도 있다.
1982년 9월 발간된 속초고 교지 <설악 6호>에 실린 ‘영북지방 어민의 방언 고찰’에는 ‘바리’라는 이름이 붙은 말이 몇 개 나온다. 시망바리·망선바리(유자망어업), 남바리(타향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 삼마이바리(삼중망어업), 조롱바리(문어잡이), 수경바리가 나온다. 삼마이는 삼중망의 일본말이다. ‘조롱바리’는 ‘지가리’라고도 하는 문어낚시잡이를 말한다. ‘수경바리’는 수경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물고기 이름만이 아니라, 어구나 어획방법에 따른 조업에도 ‘바리’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잡은 물고기를 선원들이 함께 나누는 방식의 고기잡이를 ‘선중바리’라고 하고, 반면 각자 잡은 물고기를 자기 몫으로 갖는 방식을 ‘제따먹기’라고 했다.
‘바리’라는 말은 우리 지역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다. 물속을 들여다 보는 사각통 ‘창경’으로 물고기를 잡는 삼척 장호항의 ‘창경바리’, 경북 영덕의 ‘청어바리’, 죽변의 ‘꽁치바리’도 있다. 동해안 남쪽에서는 연근해에서 잡았다는 뜻으로 대게, 홍게, 골뱅이, 새우라는 단어 앞에 ‘갓바리’라는 말을 붙여 쓴다. 서해안은 ‘조기바리’, ‘삼치바리’, 제주도는 ‘옥돔바리’, ‘갈치바리’라고 쓴다. 인터넷 판매 수산물에는 ‘당일바리’라는 말을 많이 붙는다. 당일조업으로 잡아온 싱싱한 수산물이라는 뜻이다.
‘바리’라는 말이 순수 우리말일까, 아니면 일본식 말일까? 해양수산부에서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립국어원과 한글학회의 검증을 거쳐 일본식 해양수산용어 64개를 우리말로 바꾸어 쓰도록 캠페인을 벌였다. 여기에 ‘바리’가 포함되어 ‘작업’ 또는 ‘조업’으로 바꾸도록 했다.
그러나 ‘바리’가 우리 고유말이라는 의견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2007년 6월 7일 중앙일보에 나온 ‘우리말바루기’에서는 ‘시다바리’와 ‘나와바리’는 일본말이지만 ‘당일바리’의 ‘바리’는 우리말이라고 했다.
국립국어원 사업으로 동해안 일대 어촌에서 생활어를 조사한 영남대 김지숙 교수는 ‘-바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다가 의미가 확장되어 지금의 ‘-잡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봤다.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비바리’, ‘벗바리’, ‘군바리’, ‘악바리’가 있다.
남바리, 남쪽으로 내려가 고기를 잡는다
‘명태바리’와 함께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말로 ‘남바리’가 있다. 특히 울릉도나 대화퇴까지 멀리 원양 오징어잡이를 나갈 때 ‘남바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 오랜만에 나타난 친구를 만나면, “어디 남바리 갔다 왔니?”라고 말할 정도로 일상화된 말이었다.
‘남바리’라는 말은 주로 강원도 동해안지역 일대에서 쓰는 말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국어원에서 벌인 어촌생활어 조사에서는 ‘남바리’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영동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동해, 삼척 동해안 일대에서 이 말을 쓴다.
‘남바리’의 어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엇갈린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남바리’라는 말을 ‘南바리’라며, 말풀이에서 ‘명태나 오징어 같은 어종을 따라 떠돌아다니며 고기를 잡는 것’이라고 했다. 한자 南자를 쓴 걸 보면 남쪽으로 고기잡이를 간다고 볼 수 있는데, 말풀이를 보면 회유하는 고기를 따라 살던 곳을 떠나 객지(타지)에 나가서 고기잡이를 한다는 뜻이다.
‘남바리’가 남쪽으로 내려가 조업을 하는 걸 말한다는 의견이 많다. 함경도 실향민 출신으로 속초에서 자란 고 이반 교수는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담은 장편소설 <날아라 곱세기야>에서 “아버지와 같은 배를 타고 ‘남바로’에 나서기로 했다”라고 썼다. ‘남바로’는 어부들이 모항인 속초를 떠나 남쪽에 가서 오징어잡이를 하는 어로행위라고 설명하고는, 주석까지 붙여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남녘 ‘남’자와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한다는 뜻의 이북 사투리 ‘바로’의 합성어로, 일반적으로 발음하기 쉽게 ‘남바리’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남바리’를 남쪽으로 간다는 의미와 다르게 쓰는 경우도 확인된다. 속초문화원에서 발간한 <속초 청호동의 민속과 언어>에는 “객지 사람들이 남바리 와서, 장기간 한 달 이상 배를 대고 조업을 하면, 제일 먼저 성황당을 찾아간다”라고 했다. <속초시 거주 피난민정착사>에도 “속초항은 호황의 겨울 명태잡이가 끝나면 어한기가 된다. 그러면 어민들은 서해 조기잡이를 떠난다. 소위 남바리가 시작된다.”라고 했다. 이런 경우에는 ‘남바리’를 객지에 나가는 고기잡이를 뜻하는 말로 쓴 것이다. 어떤 이는 ‘남바리’의 ‘남’자가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뜻이 아니라, ‘남의 구역’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필자가 보기에 ‘남바리’는 오징어를 잡으러 남쪽으로 내려가 조업을 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말인데, 이후 어종에 상관없이 멀리 다른 지역으로 가서 조업을 한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명태바리’와 ‘남바리’라는 말에는 험한 파도에 맞서 삶을 일궈온 지역 주민들의 애환이 배어 있다. 이제 지역에서 명태는 사라지고 오징어도 예전같이 많이 잡히지 않아 생동감 있는 그 말도 듣기 힘들어졌다. 그저 우리 앞바다에 다시 명태와 오징어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말, 그리움의 말로 남아 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50년대 출어하는 어부와 가족.<출처 : 속초문화원 발간 ‘옛 사진으로 엮은 속초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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