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말 같다는 우리 지역 말씨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영동지역이라고 해도 속초·고성·양양 우리 지역의 말과 강릉 이남의 말은 억양 등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새국어생활> 2006년 겨울호에 실린 김봉국 부산교대 교수의 ‘강원도 말을 찾아서’에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내용이 나온다.
“삼척 말을 조사할 때 도움을 주셨던 제보자의 얘기를 빌리면, 제보자가 제주도에 여행을 하러 갔었을 때 강원도 말에 익숙하지 않은 제주도 사람들은 경상도 말 못지않게 억세 보이는 억양을 구사하는 삼척 사람을 당연히 경상도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다.”
“방언 조사를 위해서 양양과 고성을 찾아가서 처음으로 이 지역말을 들었을 때 마치 북한 말을 듣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비단 필자의 이런 경험이 아니라도 이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은 양양이나 고성의 말을 들으면 한결같이 북한 말을 듣는 것 같다고 한다.”
김 교수는 양양 출신 후배의 이야기 한 토막을 사례로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생활을 한동안 하다가 고향 양양으로 예비군 훈련을 갔는데, 오가는 대화를 들으니, 군복만 국군 군복을 입었을 뿐이지, 오가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영락없이 북한 군인들이 우리 군복을 입고 훈련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속초 출신인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갔을 때, 강원도 학생들이 머무는 기숙사에서 만난 강릉 출신 학생의 말을 듣고는 마치 경상도 출신인 줄 알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신입생 인사 자리에서, 내 말을 듣고 난 한 선배가 “어디 북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내 말에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지역 말씨가 배어 있었다. 부모님이 함경도 출신인 어느 후배는 대학시절 서울에서 북한 말을 쓴다고 세 번씩이나 신고를 당해 경찰이 찾아왔었다고 했다. 그래서 후배는 당시 신분을 증명하는 학생증을 항상 갖고 다녔다고 했다.
우리 지역 말은 북단영동방언권으로 분류
예전부터 강원도방언은 중부방언으로 분류되었다. 1981년 강릉 출신 이익섭 교수의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강원도 방언의 지역 구분이 이뤄졌다. 이 교수는 강원방언을 크게 영동방언과 영서방언으로 나누고, 영동방언을 다시 북단영동방언권(고성·양양), 강릉방언권, 삼척방언권, 서남영동방언권(영월·평창·정선)으로 나누었다. 지금까지도 강원도 방언 구분은 이에 따르고 있다.
특히 이익섭 교수는 강릉방언은 유독 고립된 섬과 같은 지역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양양과 고성, 속초지역의 영동북부지역은 남부방언과 북부방언의 접촉지대이며, 영서지방의 영향까지 받은 곳이라고 했다.
1990년 민현식 강릉대 교수는 <속초시지>에 속초 도문동과 노학동에서 11명의 주민들로부터 채록한 속초방언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이 글에서 민 교수는 속초지역은 고성·양양지역과 같이 북부방언의 억양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데다 함경도 출신의 집단주거에 따른 영향도 주목해야한다고 제기했다. 특히 청호동지역은 강릉방언과 같이 고립된 잔재지역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민 교수는 속초에서 채록한 방언 중 강릉 방언과 구별되는 어휘를 게시했다. 이중 몇 개를 소개한다.
민 교수는 속초방언은 ‘-나?’보다는 ‘-니?’가 우세한 점, 단어나 문장의 고저 억양이 심한 점, 일부 단어가 강릉방언과 구별되는 점 등을 들어 속초방언이 강릉, 삼척방언과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양양의 방언에 대해서는 2010년 발간된 <양양군지>에 강릉원주대 김무림 교수가 ‘양양의 언어’에 대해 서술했다. 김 교수는 “양양은 전체적으로 강릉보다 고성쪽에 더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성조의 측면에서는 고성과 양양은 비성조 언어에 속하지만, 강릉은 성조 언어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라고 했다. 김 교수도 해라체 의문형 종결어미가 강릉 이남은 ‘-나?’인 반면에 양양 및 고성지역은 ‘-니?’를 사용한다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경상도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강릉말과 양양, 고성의 말이 구별된다는 것이다.
양양에서 북한 영흥지역까지 같은 강원방언권
그렇다면 속초와 양양, 고성지역 말은 남쪽으로 강릉지역과 구별되는데, 북쪽으로는 어디까지 같은 방언권으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1944년 일본인 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30년 동안의 조선 방언 연구 결과를 펴낸 <조선어 방언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2009년 전남대학교 이진호 교수가 우리말로 번역해 <한국어 방언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다. 여기에는 ‘함경도 방언과 강원도 방언의 경계’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오구라 교수는 서울과 함흥, 정평, 영흥, 고원, 안변, 양양의 방언을 비교한 결과, 당시 함경남도와 강원도 경계인 안변 일대에서 방언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더 올라가서 정평과 영흥(현재는 금야군) 사이에서 갈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함경도 방언의 특징인 조동사 ‘함메다 / 함메’, ‘잇슴메다 / 잇슴메’, ‘-하지비’는 함흥, 정평 지방 말에는 나오지만, 영흥 이남 말에는 나오지 않는다. 사용하는 단어도 정평과 영흥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린다. 오구라 교수는 이 지역의 말을 경기방언 또는 강원방언으로 봐야하고, 함경도 방언은 정평 이북 지역의 방언이라고 했다.
영흥 이남인 고원과 안변, 양양은 같은 강원도 방언권으로 원산도 여기에 포함된다. 남한의 양양과 북한의 원산은 예로부터 가까웠다. 1910년대 이후 양양에서 서울을 갈 때 원산을 거쳐 갔으며, 1937년에는 양양에서 원산까지 기차가 운행되었다. 양양에서 상급학교를 갈 때도 원산으로 갔다.
반면 속초에 정착한 실향민 중에 북청, 단천 출신이 많다. 이들은 함흥 이북지역으로 본격적인 함경도방언권이다. 함경도 실향민들이 정착한 속초는 강원도 말과 함경도 말이 함께 어울린 지역이다.
북쪽 말씨 같다는 속초·고성·양양의 말은 남북이 함께 어울린 말로, 남북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말이다. 남북의 언어 동질성을 확인하고 서로 뒤섞이고 융합하는 희망의 언어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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