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라는 편협과 아집에 빠지는 걸 경계하면서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각 지역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말이란 사소한 듯하지만, 우리 지역의 문화와 삶을
반영한 것이기에 정말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생활언어에서 우리지역 정체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 지역을 부르는 말은 여럿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속초시, 고성군, 양양군이고, 지리적으로는 영서지방과 구별되는 영동지방에 속한다. 영동지방에서도 속초와 고성, 양양은 영동북부지역(영동북부권), 영북지역(영북권)이라고 부른다. 아울러 인제군까지 포함해 설악산을 공유한 4개 시·군이라고 해서 설악권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우리 지역을 말할 때, 영동북부, 영북이라는 말보다는 설악권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물론 고성군은 설악권보다는 금강권으로, 인제는 영북이 아닌 영서권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보통은 인접한 4개 시군을 설악권이라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설악권 지역이라는 이름에는 설악산을 거점으로 한 관광산업의 영향이 큰 몫을 했다.
지역(local)의 구분은 교통과 통신, 미디어의 발달로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은 지역농산물(local food), 지역문화(local culture)라는 말에서부터 로컬리티(locality), 지역학, 로컬리티 인문학, 로컬 콘텐츠,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아카이브 등 다양한 지역 관련 단어가 등장했다. 지역의 구분은 점차 해체되어감에도 지역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지역별로 특색있는 수제맥주공장이 생겨나면서 ‘로컬 브루어리’라는 말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브루어리(brewery)는 특정지역의 맥주공장을 뜻하는 말로, 이들 지역 브루어리가 참가하는 맥주박람회가 열리기도 하고, 어떤 맥주공장은 지역 관광명소로 자리잡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 수제맥주의 역사가 짧아서 아직은 지역 양조장마다 맥주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 쉽게 구별할 수는 없지만, 로컬 브루어리의 등장은 획일화와 대중생산의 시대에도 지역색을 내세운 다양한 지역문화산업이 꽃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지역마다 맛을 달리하는 향토 막걸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역색깔 찾아내어 그 가치 공유
흔히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한 지역의 특색을 지역색 또는 지방색, 로컬 컬러(local color)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인문학계에서는 지역성을 뜻하는 로컬리티(locality)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과거 국가권력과 중앙의 획일성과 지배담론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지역성을 강조하는 로컬리티를 설정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고유의 색깔이 분명했다. 지역색깔은 사람들의 사는 생활방식을 포함해서 공통의 문화와 역사적 경험, 음식, 언어와 민속, 산업 등 인문환경, 지형과 지질 등 자연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현되었다. 통합과 표준화의 시대 흐름에도 불구하고 문화다양성의 측면에서 지역색깔은 중요하다. 이는 지역정체성의 표현이며, 소중한 지역 자산이다. 나아가 훌륭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지역색깔은 지역의 통합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다른 지역과의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칫 지역주의라는 편협과 아집에 빠지는 걸 경계하면서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각 지역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신문인 <설악신문>에서 ‘설악권 지역색깔을 찾아서’라는 로컬리티 연재기획을 진행하고자 한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던, 또는 무심코 지나쳤던 지역색깔을 찾아내어, 그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지켜나가고자 한다.
지역 말은 지역색깔 가장 잘 드러내
연재기획에서는 가장 먼저 우리 지역 말부터 찾아볼 계획이다. 지역 말은 지역색깔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같은 강원도 방언이라고 해도 영동과 영서가 다르고, 영동에서도 영동북부지역인 고성과 양양, 속초의 말과 강릉의 말이 확연히 구별된다. 즉 지역별로 생활문화권이 달랐다고 볼 수 있다.
흔히 강릉 말은 경상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우리 지역 말은 함경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억양과 말투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속초 사람이 듣기에는 강릉 말은 경상도 말로 들리고, 강릉 사람 귀에는 속초 말이 북한 말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지역방송국 TV나 라디오에서 우리는 강릉 말을 우리 지역의 말로 듣고 있다.
같은 물고기로 끓여낸 음식 이름도 같은 영동지방이 다르다. 같은 물고기로 끓여낸 음식이지만, 삼척에는 곰치국이 있고, 속초에는 물곰탕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속초에서도 물곰탕과 곰치국이라는 말을 함께 쓴다. 그렇다면 물곰탕과 곰치국은 같은 음식인가?
이런 경우도 있다. 명태의 본고장이었던 우리 고장에서는 명태 관련 말이 많이 발달했다. 그중에 명태의 정소를 ‘곤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표준어는 물고기의 정소를 ‘이리’라고 한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명태의 이리, 알, 내장을 통틀어 ‘고지’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명태 곤지를 곤지라고 부르면 틀린 말이 되는 건가? 곤지로 끓여낸 탕을 곤지탕이 아닌 고지탕이나 이리탕라고 고쳐 불러야 할까?
속초에서 10월 말이면 양미리 축제를 개최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신문에 양미리라는 말은 잘못 쓰고 있는 말이라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양미리는 다른 물고기의 이름이고, 정확히 말하면 동해안 까나리라고 불러야 맞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속초 양미리축제가 아니라 동해안 까나리축제로 불러야 할까?
말이란 사소한 듯하지만, 우리 지역의 문화와 삶을 반영한 것이기에 정말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생활언어에서 우리 지역 정체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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