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진역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역이다. 민통선 이북에 있기 때문에 군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제진역으로 가는 길 자체가 분단현실을 만나는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세대에게 분단과 통일은 모두 낯선 단어이다. 북한은 더더욱 먼 나라이다. 강원도교육청이 ‘제진역, 통일로 가는 평화열차’ 체험장(센터장 안종원)을 만든 이유이다. 기차로 떠나는 북한 여행은 북한문화 체험과 통일한반도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 타고 평양, 백두산 지나 런던까지
제진역 체험은 검문소부터 시작이다. 평화안보공원에서 티켓을 끊고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 검문소이다. 검문을 하는 사병은 꼼꼼하게 신원확인을 한 후 통과시킨다. 최북단, DMZ, 분단현실 등의 단어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차량으로 10여분을 이동하면 제진역에 도착한다. 승무원이 기다리고 있다. 제진역의 모든 체험은 남측 안내원의 인솔에 따라 20명씩 한 팀이 되어 진행된다.
대합실에 들어서자 대형 멀티비전으로 2018년 판문점 회담 영상이 나온다. 꿈같은 사건은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7.4 남북공동선언, 6.15 남북공동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교류의 역사적 선언문이 투명스크린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첨단 전시기법으로 20세기에 갇힌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밖에 북한여행 블루마블 게임과 통일다트, 통일 윷놀이 등의 놀이시설이 있다. 학생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재미있는 통일체험을 위한 장치이다.
제진역 기차여행을 위해서는 전자티켓을 발권 받아야 한다. 키오스크에 이름, 전화번호, 중간기착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카카오톡 메시지로 QR코드가 발부된다. 핸드폰이 없는 방문객을 위해 제진역 북한여행을 기념하는 ‘방북사증’을 준다. 여권처럼 만든 방북사증에 평양과 베이징, 런던 같은 도시 방문 기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제진역과 유럽의 도시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다른 전시대에 새겨진 열차 노선도를 보니 이해가 갔다. 제진역에서 탄 기차가 평양과 백두산을 지나 베이징과 베를린을 경유하여 파리와 런던까지 이어지는 노선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렘을 지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통일한반도는 미래세대에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상상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이제 출경장으로 향한다. 출경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남북 모두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한반도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단어이다. 전자티켓 QR코드를 사용하여 출경장에서 인식하면 북한 안내원의 인사가 들려온다. 북한여행의 시작이다.
실감 나는 기차 여행, 친숙한 북한문화
열차 체험은 총 5량의 기차와 야외 기찻길에서 이뤄진다. 현재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첨단 기법이 총동원되었다. 실감나는 기차여행, 친숙한 북한문화, 대륙으로 향하는 미래상상을 감성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1호차에 들어서자 북측안내원이 철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다시 이어지는 동해북부선이 제진역의 장소성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3면 이머시브 영상을 통해 금강산과 평양,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기차여행을 실감체험하는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2호차는 북한문화 체험관이다. 북한의 영화와 드라마, 공연 등의 문화콘텐츠와 학교생활, 북한 교과서를 만나고 북한 OX퀴즈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3호차는 북한 최고도시 평양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평양 안내원이 직접 평양의 볼거리, 먹거리, 유희거리를 영상과 사진으로 설명한다. 4호차는 미니공연장이다. 북한 최고의 악사와 가수가 인기 노래 ‘달려가자 미래로’를 들려준다. 체험객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완성하는 이벤트가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었다. 마지막 5호차는 통일한반도의 위대한 여정을 상상할 수 있다. 제진역에서 출발한 대륙열차가 북한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의 중요도시를 거치는 체험을 4D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기차여행이 끝난 후 기찻길을 함께 걷는다. 증강현실(AR)포토존이 있다. 다양한 북한주민의 모습이 핸드폰에 등장한다. 저마다 원하는 모습의 주민들과 사진촬영을 할 수 있다. 기찻길 끝에는 통일염원 포토존을 만날 수 있다. 남북통일을 향해 한 계단씩 오르자는 의미이다. 5월의 햇살이 기찻길에 쏟아진다.
간성초·고성고 학생들 개장 후 첫 체험
제진역 체험은 주입식 통일교육에서 통일감수성 체험교육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첨단 영상과 전시기법이 남측과 북측 안내원의 아날로그한 감성과 만나면서 통일은 재미있고, 한반도는 대륙으로 열려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끊어진 철길을 잇는 제진역의 장소성이 통일감수성을 높여주는 에듀테인먼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체험은 오전과 오후 각 1회씩 2시간이며, 회당 100명 이내로 제한된다. 대합실부터 기차 차량, 기찻길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생을 잘 아는 퇴직교사가 남측 안내원을 맡고, 연극인이 북측 안내원으로 등장한다. 이미 160여개 학교에서 1만여명이 예약을 신청했다. 설악산 수학여행처럼, 제진역 통일여행이 학창시절의 추억을 장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이다. 지난 21일 간성초교와 고성고 학생들이 개장 후 첫 체험을 했다.
제진역이 위치한 고성군도 새로운 관광수요를 예측한다. 접경지역 관광이 분단강조 안보관광에서 분단극복 평화관광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장한 명파리의 ‘아트호텔’과 화진포, 거진까지 이어지는 평화관광 거점도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운영을 맡은 설악문화연구회 안종원 센터장은 “본격적인 개장을 앞두고 진행한 시범운영에서 체험객들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며 “운영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통일놀이 마당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제진역, 통일로 가는 평화열차’ 체험장 기차. 5량의 기차에서 다양한 체험을 만날 수 있다.
슬로건 포토존에 선 북측 안내원. 연극처럼 실감나는 북한여행을 체험하게 만든다.
지난 21일 개장 이후 첫 관람객으로 온 간성초 학생들이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개장식에서 명파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통일메시지를 남기는 이인영 통일부장관과 함명준 고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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