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 속초시의회가 영랑호생태탐방로사업 공유재산 취득을 의결했다. 41억여원 규모의 이 사업은 지난 2019년 7월 24일 예산안 의결 이전에 속초시의회 사전의결을 받았어야 했다. 법정기한이 21개월이나 지났고, 이미 사업비의 절반이 넘는 21억여원이 지출된 상태에서 시의회는 속초시 지방의회 역사상 처음 있는 사후의결을 했다.
지방의회 의결을 받지 않은 지방자치단체 중요재산 취득은 법적으로 무효이다. 2004년 원주시는 대우건설과 원일프라자 소송을 벌였으나, 시의회 중요재산 취득의결 누락을 이유로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해 50억원 이상을 물어줬다. 이번 속초시의회 의결처럼 법정기한 21개월을 넘긴 중요재산 취득 의결이 법적으로 유효하다면, 우리나라 지방자치 근간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민 반대에도 무릅쓰고 속초시가 발주한 영랑호생태탐방로조성사업이 시의회 공유재산 취득의결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난해 12월 말 처음 확인되었다. 그러나 속초시는 취득 시설물은 공유재산이 아니라 물품이기에 시의회 의결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1월 19일 강원도에 주민감사청구를 제기했고, 수차례 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속초시는 계속 사업을 강행했다.
4월 초 강원도 감사가 시작되자 속초시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시의회에 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다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하자를 치유하겠다고 뒤늦게 의안을 제출하고 나서도 속초시는 다시 9억5천여만원을 추가로 지출했다. 그야말로 의회를 우롱했다.
시의회에서는 안건 상정과 의결에 앞서 두 차례 의원간담회가 있었다. 의원들 사이에서 상정여부 논란이 일었다. 의결권을 침범당한 의회가 다시 위법한 의안을 의결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항의도 거셌다. 그러나 시의회 의장은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안을 상정했고, 결국 시의원들은 이의 없이 의결해줬다.
지난 5월 6일 열린 속초시의회 임시회는 주민들의 항의로 회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방청 주민들이 다 쫓겨나고 이뤄진 회의는 너무 순조로웠다. 두 시의원의 안건 상정 보류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진행된 의장의 가결 선포에 대해 어느 의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속초시장은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도 하지 않았다. 속초시가 제출한 의안에는 왜 법정기일을 넘겨 제출되었는지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더구나 속초시의회도 안건 위법여부에 대해 어떤 법률검토도 받지 않았다. 거봐라. 시의회는 자동거수기야. 우리가 그냥 무시해도 괜찮아. 아마 그날 회의장에 배석한 공무원들은 이렇게 비웃었을 것이다.
속초시의회는 죽었다. 행정의 잘못을 바로잡고 견제해야할 주민대표기관인 지방의회가 스로 자기존재를 부정했다. 행정의 오만과 독선, 시의회의 무능과 자기부정으로 속초의 지방자치는 암울하다.
영랑호를 지키고자 나선 주민 1인 시위가 3백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온통 난개발로 망가지는 속초에서 영랑호는 속초시민의 마지막 보루이다. 주민들은 지난 4월 21일 사업 무효를 확인하는 주민소송을 제기했다. 위법행정에 저항하는 속초시민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엄경선
전 속초시주민참여예산 시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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