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50분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30분이 빠르다. 매주 목요일마다 양주캠퍼스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새벽식사와 간식보따리를 챙겨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원격수업을 예상하고 6시간 연속강의로 배정했더니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쉬는 시간에 간식으로 때우면서 강의를 해야 한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갔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보통 6시 전에 출발한다.
양주캠퍼스를 가려면 무려 4개의 접경지역 시·군을 지나야 한다. 접경지역은 비무장지대와 연접한 시·군과 민간인통제선 이남지역 중에서 거리 및 지리적 여건을 기준으로 정하는 시·군을 말한다. 따라서 비무장지대 연접한 고성군, 인제군과 민통선이남 춘천시, 양주시가 해당한다. 양주는 38선 이남이지만 북단경계에서 휴전선까지 불과 14킬로미터 거리다. 따라서 양주 가는 길은 6.25전쟁 격전지를 지나는 길이다. 필자가 이름 하기를 ‘자유수호벨트’라 하였다.
미시령을 지난다. 설악산전투를 기억하라고 미시령에 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최대격전지 향로봉지구전투는 미10군단 주축의 전투로 북한군을 격퇴하여 양구해안분지까지 아군공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미시령 내리막길 오른편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아군 절반이 전사한 최초의 유격대 백골병단 전적비가 우뚝 서있다. 원통리에서 서화면 서화리가는 칠성고개, 12사단 앞 칠성탑은 6.25때 혁혁한 공을 세운 7사단의 기념비다. 덕산리 빨간다리 리빙스턴교는 다리가 없어 도강하다 전사한 미군 리빙스턴 소령의 아내가 미국에서 모금하여 돌아와 세운다리다. 인제성당은 6.25전쟁 직후 1954년 미국원조로 건축했다. 그해 위문공연을 왔던 마릴린먼로는 지금도 살구미다리 아래 홀로 있다. 필자가 ‘살구미다리 로멘스’라 명명했다.
가넷고개는 군축령이다. 가넷고개 모퉁이에 4번이나 옮긴 인제지구전투전적비가 위태롭게 서있다. 관대리 38대교 대형 태극기아래 6.25 기념비를 돌아보자. 홍천군 장남리에는 프랑스 의무대장 쥴쟝루이 소령이 있다. 장남리전투에서 한국군 2명을 구출하고 자신은 지뢰를 밟아 34세에 산화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보낸 꽃바구니가 빈손의 필자를 부끄럽게 했다. 자유·평등·박애 프랑스 삼색기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관심 없으면 장남리 보리밥만 먹고 지나친다.
홍천군 무궁화동산에는 홍천지구전투전적비, 3.1운동기념비, 충혼탑이 있다. 가장 안쪽에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선생 동상과 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 새겨져 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하나님 주신동산/이 동산에 할 일 많아/사방에 일꾼을 부르네/곧 이날에 일 가려고/그 누가 대답을 할까. 지금도 여전한 위엄으로 젊은이들에게 애국계몽운동을 명하시는 듯하다.
필자의 준마가 서울양양고속도로 춘천과 가평을 지난다. 6.25춘천전투에서 국군대승으로 북한군은 2천명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여 남하를 지연시켰다. 가평전투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연방군이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2시간 30분이면 의정부를 지난다. 의정부는 1950년대 주한미군 주둔지 군사도시로 성장했다. 캠프 라과디아, 캠프 레드클라우드, 캠프 스탠리 등 미군 기지들이 있었다. 미군부대 캠프명은 전사자의 이름을 따서 기린다. 6.25때 미군 전사자만 3만6,516명에 이른다. 6.25당시 행정구역은 양주군 의정부읍이었다. 북한군 기습남침으로 당일 동두천, 포천을 점령당하고 국군 7사단은 양주시 덕정동에 재집결하여 동두천을 탈환했으나 북한군 반격으로 26일 재점령 당했다. 9월 15일 유엔의 인천상륙작전 때까지 그러했다.
2006년에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약칭 미군공여구역법)이 공포되어 경기북부지역 미군부대 공여지에 대학캠퍼스 조성이 가능했다. 2014년에 처음으로 경동대가 미군공여구역법을 적용받아 양주캠퍼스를 개설했다. 올해 지방대학들의 참담한 입시결과와 지속되는 학령인구감소를 볼 때 선견지명의 결단이었다. 한쪽 캠퍼스라도 유지돼야 대학의 균형발전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린 유엔군 주둔지, 미군부대 공여지에서 조국의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6시간 동안 강의를 하노라면 피곤하지만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다시 ‘자유수호벨트’에 오른다.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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