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231만7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4.5%에 불과하다. 2000년의 농가 인구는 40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8%였는데 농가 인구 비율이 20년 전보다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심각한 지표는 더 있다.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42.5%로 2000년 21.7%보다 두 배로 증가했고, 농가의 중위 연령은 62.4세로 나타났다.
농촌 고령화가 이처럼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청년을 만나는 일은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청년이 부모 세대와 함께 마음을 맞춰 농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면 더 흐뭇해진다.
40여년 축산인 아버지, 귀향한 아들
최근 고성의 한 축산농가에서 무게가 1톤이 넘는 슈퍼한우가 나왔다. 거진읍 초계리 대성농장 장형근(65)·정권(34) 부자가 키운 소로, 이 가계는 3대째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장형근 대표의 부친은 황해도 연안군 출신으로 한국전쟁 기에 월남한 후 고성에서 돼지를 사육했고 이를 물려받은 장 대표가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형근 대표는 20대 초반에 군에서 제대한 이후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종사하기 시작해 40여 년의 세월을 축산인으로 살았다.
아들 정권 씨는 원래 축산업에 종사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강원대 분자생명과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무역 관련 일을 3년 정도 했다. 그는 이직하려던 시점에 부친 장 대표가 축산업을 권하면서 서른이 다 돼서 소를 키우게 됐다. 정권 씨는 원래 도시 생활을 선망하지 않았고 동물을 좋아하고 낚시를 취미로 삼아 자연을 즐기는 성격이라 큰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나 고성으로 돌아왔다.
정권 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떠올리며 현재 일에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부친 장 대표는 한편으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듯했다.
“축산업은 1년 365일 자리를 비우기 힘든 일입니다. 주 52시간 일하는 시대에 아들에게 축산업을 권하는 게 과연 옳은지 고민도 됐었죠.”
장 대표는 아예 축산업을 접을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들이 축산업을 잇게 되면서 이제는 규모화를 지향하며 한층 체계적으로 축산을 하고 있다. 이들 부자는 모두 233두를 사육하고 있다.
“전 컴맹이라 컴퓨터로 자료를 정리하며 소를 키운다고 생각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아들이 축산업을 시작하면서 농장이 좀 더 체계화됐지요.”
아들 정권 씨는 수정·분만 일자, 백신 접종, 개체 특성 등을 꼼꼼히 기록해두고 있으며 휴대전화를 사용해 이런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며 한우 사육에 정성을 기울인다.
슈퍼한우를 출하한 축산인답게 이들 부자의 하루는 매우 일찍 시작된다. 부자는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각인 새벽 4시 무렵 기상해 간성읍 자택을 나선다. 부친 장 대표는 새벽 일을 마치면 아내가 운영하는 간성시장의 정육점으로 가서 아침 작업을 하고 다시 오전 9시면 축사로 돌아왔다가 오후에는 다시 정육점에 가서 일을 한다. 부친이 오후에 축사를 떠나면 아들 정권 씨는 축사에서 오후 작업을 마무리한다.
장 대표는 항상 축사를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많은 신경을 쓴다고 했다.
“축산업을 좋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우리 농장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성 한우 널리 알려지길…
장 대표는 아들이 농업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열심히 배우고 꼼꼼하게 일하는 모습에 흡족한 듯했다. 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아들이 잘해나가고 있어서 할 말이 별달리 없다”며, 다만 대부분의 부모 마음이 그렇듯 “아들이 어서 결혼했으면 좋겠지만 잔소리로 들을까 싶어 그런 말은 안 하고 있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장 대표는 이제 6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더 많은 부분을 아들이 맡아서 해나가길 바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농장 일을 아예 관둘 생각은 없다. 자신의 체력을 고려하면서 아들의 농장 운영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아들 정권 씨는 농업마이스터대학 한우 과정에서 전문적인 식견을 갈고닦고, 후계축산인 선후배들과의 교류에도 더욱 신경을 쓰려고 한다. 고성 축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축산인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 혼자 잘되기보다 서로 노력해서 고성 한우가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부단히 배움을 이어가는 아들 축산인과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변함없이 성실한 축산인이 고성 축산 발전을 위해 소처럼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대성농장 장형근 대표(오른쪽)와 아들 정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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