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이 곧 시작된다. 이맘때면 항시 생각나는 두 시인이 있다. 속초의 시인, 이성선과 최명길이다. 그들은 설악의 품 안에서 살며 설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다가 같은 해는 아니지만, 같은 날짜인 5월 4일에 영면했다. 출생도 1년 정도 차이밖에 안되니 두 사람의 인연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굳이 고향을 따지자면 이 시인은 속초 옆 고성이요, 최 시인은 강릉이지만, 모두 설악을 좋아하여 속초 주변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속초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속초가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속초에 살면서 창간 50주년이 넘은 설악문우회 동인지 <갈뫼> 창간의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전국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물소리시낭송회’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이성선과 최명길이 한국 시단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시가 서정시의 본령을 잃지 않고,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내밀성과 유현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히 선적 인식을 근간으로 하여 구도자적 태도로 자연과 우주의 철리(哲理)를 시로 노래했다. 한국현대시 연구를 40년 이상 한 필자의 안목으로 볼 때,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현대시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될 시인들이다. 문화예술의 도시 속초가 긍지를 가지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홍보를 할 만하다.
그러나 두 시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시비의 상황을 보면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성선 시인의 경우 고성군 토성면 성대리에 그의 시비가 있는데, 현재 시비가 있는 곳은 남의 땅이라 옹색하기 그지없고 탐방 한 번 하려면 집 주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형국이다. 최명길 시인의 경우 영랑호에 세워져 있는데, 당시에는 속초시장과 담당자의 배려로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임대 만기가 되니 영랑호 소유권자인 신세계 주식회사가 시비 이전을 해 주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런 딱한 현실에 접해 비교하게 되는 것은 강릉시에 세워진 김동명 시비 및 문학관과, 인제읍에 세워진 박인환 시비 및 문학관이다. 사실 김동명은 9세 때 강릉을 떠나 함흥으로 갔고, 박인환은 11세 때 인제에서 서울로 갔기에 그들은 고향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과 인제는 두 시인을 시비만이 아니라 문학관까지 건립하여 그들의 시적 업적을 홍보하고, 그를 중심으로 문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이성선과 최명길 두 시인은 속초에 거주하면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고, 시를 통해 설악의 여러 명소와 속초의 청초호·외옹치·미시령·영랑호 등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작고한 후 시비 하나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홀대를 받고 있다.
나는 80년대 초 강릉대(현 강릉원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두 분과 교류한 인연이 있다. 물소리시낭송회에도 여러 번 초대되어 문학강연을 했으며, 최명길 시인 시비 건립 때는 유족이나 낭송회 회원들의 권유로 건립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당시 한국 시단의 전·현직 한국시인협회장을 비롯하여 주요 시인들이 기꺼이 시비 건립의 자문위원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내가 이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두 시인의 시비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속초시가 나서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혹자는 속초가 고향이 아닌 두 시인을 그렇게 대우할 필요가 있겠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향이 아닌 곳에 시비가 세워진 시인들은 무수히 많다. 심지어 타국인 일본 동지사대 교정에는 그 대학에 재학했던 시인들,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하루 빨리 속초시가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시비 부지를 마련해주고, 그곳이 속초의 문화예술적 명소가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약력> : 서울 출생.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와 시학》을 통해 시인 등단. 강릉대 및 한성대 국문학과 교수, 한국시학회 회장 등 역임. 시집 『오두막집에 램프를 켜고』 『그대 아직 사랑할 수 있으리』 『바다로 간 진흙소』 『저 너머』, 평론집 『몽상 속의 산책을 위한 시학』 『무명화를 위한 변명』, 저서 『한국현대시인논고』 『서정주』 『한국근대기 낭만주의 전개 연구』 『현대시 속의 문화풍경』 『한국현대시의 층위와 진폭』 등 출간. 현재 한성대 명예교수.
박호영
시인/한성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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