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갈길 잃은 설악권 해안국도의 현주소Ⅰ
②갈길 잃은 설악권 산악국도의 현주소Ⅱ
③고속도로 개통 후 해안·산악국도 활성화 잰걸음 뗀 강릉시의 비전
④국도 44·46호선 교차거점 인제군의 현주소와 활성화 대책
⑤양구 거쳐 춘천까지 이어지는 접경지 국도 46호선, 뒤안길 벗어나나
⑥홍천-양평 잇는 국도 44호선 수도권 힐링 길 되나
⑦설악권 해안·산악 연결 국도 활성화 전환점 찾자
과거 수도권과 이어지는 설악권의 육상교통망은 국도 44호선인 한계령(오색령)과 국도 46호선 진부령 그리고 이 두 곳과 연결되는 미시령 등 3곳이 전부였다.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인 영(嶺)을 넘어야만 영서지방을 거쳐 서울 등 수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국도 44·46호선이 중추적인 교통망 역할을 해온 가운데 물류의 발달과 동해안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육상교통망 확충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지난 2006년 미시령터널에 이어 지난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설악권과 수도권은 1시간 30분대로 좁혀지게 됐다. 하지만 빠른 길로 인해 국도 44·46호선과 미시령도로의 통행량이 급감하면서 그 주변의 상권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까지 덮쳐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고속도로 통행량 ‘늘자’ 국도 ‘급감’
설악권의 주요 산악을 연결하는 국도의 통행량은 지난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더욱 급감했고 빠르게 주변 상권을 블랙홀 속으로 밀어넣었다.
한국도로공사의 서울양양고속도로 연간 통행량을 살펴보면 2017년 1천383만5,654대로 전년보다 117% 상승한 데 이어 2018년에는 1천595만9,646대로 역시 전년보다 115% 증가했고, 2019년에는 1천647만9,932대로 10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시령 관통도로는 2006년 터널 개통 후 2016년 563만대를 기록했지만, 매년 20~30%씩 줄어 지난해에는 205만대로 63%까지 급감했다. 수도권과 동해안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이 국도 등 미시령관통도로의 통행량 감소를 가져온 것이다.
예전에는 설악권의 주요 국도 주변 상권이 주말 특수를 누렸지만,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후에는 그나마 누리던 ‘주말 특수’도 사라지고 말았다.
산악지역 국도변 상인들은 “미시령터널이 개통됐을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한 후에는 차량 운행이 급감해 사실상 죽은 도로가 됐다”며 “시대가 발전하면서 고속도로가 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 전이라도 뭔가 활성화 대책을 선제적으로 세웠어야 했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한계령휴게소 “하루 50명도 안 찾아”
오색단풍 관광지로 잘 알려진 국도 44호선 한계령(오색령)은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과거 단풍철이면 하루 1천대 이상의 대형관광버스가 오가던 이곳은 지난 2017년 고속도로 개통 후에는 하루 평균 100대도 안 되는 차량들이 간간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13일 찾은 오색지구는 상춘철이나 단풍철이면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던 토종닭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고, 토산품과 산채를 파는 오색집단지구 내 상가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간혹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등산로나 탄산온천으로 유명한 오색그린야드호텔를 찾는 발길만 드문드문 있을 뿐, 국도변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한계령의 명물로 유명했던 정상 부근 휴게소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휴게소 주인은 “고속도로가 나기 전에는 봄, 여름, 가을은 물론 심지어는 겨울에도 하루 평균 1천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지만, 지금은 방문객이 50명도 안 될 때가 허다하다”고 했다.
정준영 오색2리 이장은 “오색령 길이 난 후로 지금처럼 사람들이 찾지 않아 장사가 안 됐던 적이 없었다”며 “코로나19까지 겹쳐 너무 어렵다 보니까, 다시 화전이라도 부쳐서 먹고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고 토로했다.
진부령도로 “주민·군부대 차량만”
한때 알프스스키장으로 유명했던 고성군 진부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도 46호선이 지나는 이곳은 스키장이 문을 닫으면서 장기적인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일에는 지역주민들과 군부대 차량의 전용도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 14일 둘러본 국도 46호선 진부령 도로는 1시간 동안 차량 5대만 지나갔다.
간성읍을 지나 광산리와 장신리를 거쳐 진부령 정상으로 향하는 국도변에는 대부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과거에도 상권이 형성되지 못했었다. 잠시 겨울철에 스키장이 성업하기도 했지만, 알프스리조트가 문을 닫으면서 급격하게 쇠퇴했다.
설악권 산악도로 중 정상의 해발고도가 가장 낮아 과거부터 영서를 잇는 빠른 도로로 이용됐던 진부령 도로는 주변에 라벤더 농장과 장신리 유원지 등이 있지만 접경지역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강훈 고성군번영회장은 “우리나라에 남은 ‘마지막 허파’로 불리는 지역이 바로 국도 46호선 진부령 도로와 그 주변임에도 정부가 인프라 개선 등에 미온적”이라며 “접경지역의 특수성이 점차 사라지는 만큼, 4차선 확장 등 근본적인 활성화 대책을 강구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시령도로, 도미노 침체 이어져
국도 44호선과 46호선 중간에 위치한 미시령 도로는 지난 2006년 영동과 영서를 관통하는 터널이 개통돼 빠른 길 역할을 했지만,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전인 2016년을 정점으로 통행량이 급감하면서 역시 쇠퇴기를 맞고 있다. 이 도로의 활성화를 겨냥해 터널 인근에 들어섰던 휴게소는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미시령 도로 속초방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인은 “예전에는 그래도 여름과 가을철에는 통행량이 받쳐줘 손님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아는 단골들만 간헐적으로 찾고 있다”며 “언젠가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미시령 도로의 통행량 감소는 국도 44·46호선과 만나는 인제지역의 상권 붕괴로 이어지는 도미노 침체현상까지 불러와 국도변 주민들은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미시령터널 통행량이 크게 줄면서 주변 상권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는 데다, 강원도가 터널 운영사에 지급해야 할 손실보전금도 2036년까지 3,85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아예 통행료를 폐지해 통행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김재진 강원연구원 박사는 “설악권의 국도와 주변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는 현재 강원도가 계획하고 있는 국도와 지방도를 관광도로로 연결하는 ‘8자형 관광도로’ 사업을 지역특성에 맞춰 특화하는 세밀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국도 44호선과 직결되는 미시령 도로는 국토부의 고속도로 요금 인하와 연동해 아예 통행료를 없애는 전제가 이뤄진다면, 통행량 증가를 통해 주변 상권 활성화의 기회로 반전시킬 여지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주현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도 44호선 한계령 도로는 통행량 급감으로 이미 국도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국도 46호선 진부령 도로는 알프스스키장 폐쇄 후 통행량이 급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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