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성당 앞마당이 보이는 작은 언덕길에서 등짐연탄을 내려놓고 은빛 물결이 일렁이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속초 앞바다를 보노라면 통한의 설움과 회한의 아픔으로 가득하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리움에 사무친 것인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사랑인가. 팔십 살이 되어가는 속초연탄은행 김상복 회장은 어려운 유년 시절 마음을 챙기며 이 골목 저 골목 저소득 이웃을 찾아 따뜻한 한 끼의 식사와 연탄배달로 그리움을 달래는 인연이 16년이 된다. 그동안 나눈 연탄만 무려 230만장. 무연탄 8,395톤으로 찍어낸 서민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자원봉사대원들과 함께 연탄 등짐을 진 채 가파른 골목길에서 흘리는 굶은 땀방울을 김 회장은 삶의 보람으로 느낀다. 초등학교 2학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대나무에 매달린 만장이 바람에 나부꼈고 제상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으며 무복을 입은 무녀가 칼춤을 추고 있었다. 김상복 회장은 담처럼 둘러선 구경꾼 틈을 헤치고 중얼거리시는 어머니 품에 덥석 안겼다. 부친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역을 채취하다 미 폭격기의 오인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비명에 갔다. 당시 16명이 사망하고 23척의 어선이 침몰하였다. 고혼으로 사라진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한풀이 진혼굿 춤을 기억한다.
아버지를 잃은 두 아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힘겨운 삶에 친정으로 갔지만 마을 사람 두려워 천한 일을 할 수 없어 결국 두 아들을 이끌고 정착한 곳이 속초다. 추운 겨울바람 속에 연탄불조차 피울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밤을 지새워가며 다리에 쥐가 나도록 얼은 손을 입으로 불어 가며 명태 함지 낚시를 풀고 낚시 미끼를 끼우는 일은 어머니의 고단한 일상이었다. 살 속 깊이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파도에 밀려오는 미역을 주워가며 자식 뒷바라지에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주름살은 굳게 파였다. 세월의 무상함과 힘든 세파를 뒤로 한 채 어머니는 94세 나이에 아버지 곁으로 떠났다. “열심히 살면서 어려운 이를 돕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는 모친의 유언은 아버지의 비운의 죽음과 유년 시절 초근목피로 생계를 이어갔던 배고픔에 등짐연탄이 식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그는 고향 울릉도를 잊지 못해 12년째 자원봉사대원을 이끌고 취약계층을 찾아 쌀과 연탄 나눔의 봉사를 펼치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경기 침체로 기부가 줄면서 때로는 사비를 털어 쌀과 연탄을 지원하지만, 그 순수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욕도 먹는다. 부정적 생각을 필터 없이 내뱉는 이기적 양심들, 공동체의 진정한 울타리를 허무는 악행을 당신의 신앙심으로 극복한다. 1968년 귀신 잡는 해병으로 월남전에 자원입대해 청룡부대에서 활약한 김 회장이 복지사각지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빈곤층의 주택 지붕에 매달린 굴뚝이나 연통을 보면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탄 걱정해야 하는 연로한 중증장애인과 독거노인은 여전히 춥다. 연탄 가격 인상에 저항하고자 청와대 집회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배부르고 등 따스하다고 약자와 서민들의 삶을 외면한 모순에 대한 울분이었다. 노인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한밤중에도 연탄을 간다. 빈곤층의 삶은 지치고 쇠약하다. 젊은 날 가난한 조국을 위해 번영의 일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온 노인들이 아닌가. 노인 빈곤율이 절반에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다. 무력한 시간, 가진 것은 없고 몸은 쇠약하고 찾아오는 친구조차 없는 고독한 노인의 삶을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더욱 힘겹고 피폐해진다. 김 회장이 연탄 봉사를 접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의 무거운 십자가가 있다”고 갈파했다. 김 회장의 십자가는 점점 궁핍해가는 나라 곳간에서의 근심이 날로 깊어져 가는 것 같다. 연탄 가루가 바람에 날리니 그리 쉽게 볼 수 없는 79살 노장의 후덕한 삶도 속절없이 저물어 가고 있다.
이대길
전 속초신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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