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판되는 그림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향은 타이포그래피 기법을 활용하여 글 텍스트의 기능을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이미지 기능을 포함시켜 그림책 보는 재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는 문자 배열, 문자 디자인과 문자 상형을 수정하는 기술과 예술이다. 상형문자는 창조되고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으로 수정된다. 글자의 정돈은 서체의 선택, 포인트 사이즈, 선 길이, 선 간격, 문장 사이의 간격 맞춤과 단어 사이의 간격 맞춤을 포함한다. 글자뿐 아니라 사진, 일러스트 등의 글의 보조적 형태를 포함한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타이포그래피는 ‘시각적 형태로 무엇인가를 기록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을 포괄적으로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현대의 타이포그래피는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의 발달에 따른 빠른 변화와 함께 그 모습도 변모해가고 있다. 이제 글자의 역할은 읽히는 기능만이 아니라 보이는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는 글자와 글자, 글자와 그림, 글자가 위치한 공간, 글자의 움직임 등 ‘글자로 구성하는 모든 디자인의 과정과 결과’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지원 작가의 그림책 ‘구두 전쟁’은 이 타이포그래피 기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보는 재미와 메시지 전달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한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강렬한 빨간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보는 세상 모든 곳에 빨간 구두가 있다. 빨간 구두를 갖고 싶은 아이 눈에는 세상이 정말 그렇게 보일 것이다. 글이 많지 않은 그림책이지만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없다. 곳곳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장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포가 된 세탁기, 방패가 된 커다란 쟁반,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화살 같은 엄마와 딸의 대화.
“엄마…… 나 구두 사 주면 안 돼?” 아이의 선제공격에 엄마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너 운동화도 많잖아.” 하지만 딸도 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엄마를 향해 구두를 외친다. 구두 성에 올라 “안 돼! 안 돼! 안 돼!”라고 하며 딸의 공격을 막는 엄마를 향해 딸은 자신의 수많은 분신들과 함께 사다리를 세우고 돌진한다. “그냥 있는 거 신어.”, “딴 엄마들은 다 사 준단 말이야!” “그렇게 부러우면 그 집 가서 살든가!” 이런 대화 역시 너무나 익숙해서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딸의 입장에서 혹은 엄마의 입장에서 누구나 한 번쯤 외쳐 봤을 법한 대사이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새긴 화살이 오고 가고 커다란 방패가 화살을 방어한다.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엄마와 딸의 신나는 전쟁이 그림책 가득 펼쳐진다.
그림책을 보며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녀와의 대화법을 강의하던 내용이 생각났다.
2018년 초록우산재단에서 조사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매일 자녀와 대화하는 부모는 53.7%, 자녀와의 대화 시간은 하루 평균 13분이라고 한다. 또 다른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하루 동안 얼마나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부모들의 대답 평균 시간은 38분, 아이들 대답 평균 시간은 6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사라진 32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하는 훈계, 꾸지람, 잔소리를 대화라고 생각하는데, 듣는 아이의 입장에서 그것은 대화가 아닌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만 그럴까? 우리는 흔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하며 설득과 공감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토론, 대담이라는 타이틀을 단 그 많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는 공감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대화와 토론이 아닌 그저 논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다. 최근 우리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이슈에 대해 생각이 다른 이들의 공방을 보며 필자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그림책을 덮으며. 출판사 리뷰에 나오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지는 것일까?’라는 구절이 계속 귓전을 맴돈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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