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사업의 착공을 앞두고 ‘속초 구간 노선과 역사의 (반)지하화’에 대한 주민 의견수렴 문제가 불거져 지역사회가 갈등과 분열에 휩싸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속철도사업이 어떤 사업인가. 노태우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분의 대통령공약사업이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번번이 좌절되다가 지역주민들의 간절한 열망과 단합된 의지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 힘들게 이뤄낸 속초시를 비롯한 설악권의 최대 숙원사업이 아닌가. 지역주민들이 생업을 접어가면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아랑곳 않고 세종시까지 원정집회를 가서 ‘동서고속철도의 조기착공’을 외친 것만 여섯 번에 달할 정도로 속초의 미래발전을 위해 절박한 사업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루라도 빨리 첫 삽을 뜨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 시점에 갑작스럽게 (반)지하화 공론화를 들고 나와 오히려 주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찬반으로 나뉘어 갈라지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난 2019년에도 속초역사 위치 공론화로 한바탕 논란을 겪었고, 2020년 3월에 철도 노선과 역사, 총사업비(2조2,840억원) 등 기본계획이 고시되어 설계를 진행하면서 이제 곧 착공할 예정인데, 굳이 지금 (반)지하화 공론화를 끄집어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속초시는 동서고속철도의 시설물이 지상에 건설되면 도시개발축 단절과 자연경관 및 조망권 훼손 등의 문제가 생겨 착공 전에 지하화가 반영될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한다는 선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주민들은 물론이고 시의원들마저 편을 갈라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엄연한 작금의 현실이다.
동서고속철도사업은 결단코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지역주민들의 이런 저런 의견을 경청하고 치우침 없이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할 시의회는 (반)지하화 공론화를 두고 의원들이 갈라져 편가르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번 공론화 과정에 정략적인 판단이 개입해 선거와 관련한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착공 후 지하화 공론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마치 (반)지하화를 반대하는 것처럼 왜곡하거나 오도해서는 안 된다. 자칫 속초시번영회를 중심으로 동서고속철도사업의 성사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지하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시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2017년 동서고속철도 전략환경영향평가 관련 주민설명회에서도 역사 지하화 문제가 거론됐었고, 초기에 ‘춘천~속초 직통선화’, ‘철도 복선화’, ‘역사 지하화’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당시 예산문제로 관계부처의 반대가 완강한 데다 이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다가는 30년 만에 이뤄진 동서고속철도사업이 무한정 표류할 수 있어 우선 착공 후 지하화를 협의해 나가야 한다고 판단해 이들 과제를 뒤로 미뤘던 것이다. (반)지하화 요구로 논란을 빚게 되고 예산이 증액되어 예타를 다시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착공뿐 아니라 사업 자체가 무한정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결코 가벼이 여겨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연 현 상황에서 (반)지하화가 착공 전에 관철될 수 있을지, 아무런 성과 없이 행정력 낭비와 지역사회 갈등만 조장하는 것이 아닌지도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반)지하화에 대한 시민 의견 수렴을 위해 만들어 지난 2월 동별 ‘2021년 희망속초 미래설계 보고회’에서 보여준 동서고속철 시뮬레이션 영상과 설문조사 항목 내용도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어 이 문제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반)지하화와 지상 건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처럼 단순 대비해 놓으면 대부분 지하화를 원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동서고속철도 7공구인 미시령 하부 통과구간(인제 북면 용대리~고성 토성면 원암리)은 이미 기본설계와 시공업체 선정을 마쳐 이르면 실시설계를 진행하면서 올해말에 우선 착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동서고속철도사업을 두고 주민들 간에 편이 갈리고 정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부디 역사적인 첫 삽을 뜨고 (반)지하화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며 공론화하는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아울러 역세권에 컨벤션센터 유치 등 동서고속화철도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는 데에도 지역의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길 희망한다.
윤광훈
전 속초시번영회장, 전 동서고속철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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