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논어》 〈학이편〉에서 “지난 과거를 말해주면 미래를 아는구나(告諸往而知來)”라는 말처럼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저의 지난 날들을 돌아봅니다. 1984년 3월 양양여고를 초임지로 시작하여 속초고를 마지막으로 37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저의 아내를 포함한 식구와 교육 가족 여러분의 도움과 배려의 덕분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저에게 현실적으로 주어진 길이 교직이었기에 매 순간 허투루 보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으며 제 인생에서 너무나 큰 축복이었습니다.
아이들 미래 위해 교육적 사색과 실천
먼저 공직자로서 ‘선공후사(先公後私)’와 ‘청신근(淸愼勤)’ 을 가슴에 새기고,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의 각오로 나름 청렴하게 생활한 것 같습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의 자세로 “청렴이란 공직자의 본질적인 임무이다. 모든 착함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뿌리이다.”라고 하였으며 공직자로서 항상 새기며 지켜야 할 것으로 두려워할 ‘이(畏)’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직자는 늘 두려워해야 한다. 내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를 두려워해야 하고(畏義), 내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해야 하며(畏法), 내가 공직을 수행함에 백성들의 마음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두려워해야 한다(畏民心).”라는 말을 지금까지 지키려 하였습니다.
또한 교육자로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교육학적 지식과 이론을 항상 옆에 두고 교육현장에서 실천하려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평소 학교교육은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침해하는 정치나 경제논리 및 외부의 압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순수한 교육적 기준이나 가치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소신을 지키며, 순수성과 열정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적 사색과 실천으로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특히 교과 지식에 대한 교수는 물론 학생들의 올바른 진로선택을 위한 꿈과 목표를 확실하게 심어주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준비 과정과 실천방법으로 효율적인 학습방법 제시하기, 긍정적 자아개념 형성과 도전정신 심어주기 그리고 무엇보다 예절, 공동체의식 등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소양 같은 바른 인성교육 등 전인교육에 집중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저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배움에 임할 것을, 그리고 꿈을 꾸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내일이 온다고 기대하지 말자”라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견지해 왔습니다. 제가 이 시대에 맞지 않은 구시대의 유물로 꼰대 같은 존재였지만 어느 한순간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못난 선생을 만나 배웠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들의 눈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매 순간 나름의 교육적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다양한 교육방법을 적용하며 아이들에게 열성을 다하면서 때로는 서슬이 퍼럴 정도로 엄격하였고, 때로는 천사처럼 자애로운 사랑으로 헌신해 왔지만 자기중심적 판단에 의한 착각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저 스스로에게 “나는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명감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면서 ‘사도’의 길을 걸어 왔는가”에 대해 자문자답을 해봅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아이들에게 더 배려하고 더 감싸주고 더 아파하는 선생이 되지 못함에 아쉬움을 갖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수업을 어느 만큼 했는지, 나는 아이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소피스트’는 아니었는지,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수용하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했는지, 나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요구나 훈계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육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역동적인 인간을 가치 지향적이고 바람직한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이에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그동안 못난 선생인 나에게 배웠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수석교사로서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에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물러나게 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리즈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현대인들은 소위 대중매체의 영향 등으로 ‘타자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고독하며, 공동체나 조직에 순응하여 어울리며 대인관계를 중시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체적인 자각이 부족하여 소외를 느끼며 자아 상실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저는 수석교사로서 교육현장에 이와 같은 상황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선생님들의 전문성 개발을 촉진하고, 애로 사항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어느 만큼 했는지, 교직원 간의 상호이해와 협동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학교 풍토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공교육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즉 학교현장에서 변화의 선도자, 학습 촉진자로서의 역할 수행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율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인간적인 만남으로 함께 호흡하며 경청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했어야 하는데, 저의 공감 능력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됨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자신 꾸짖기는 엄하게, 남 책망은 가볍게”
세월은 유수와도 같고 인생은 무상하여 붙잡을 수 없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연과 사연이 있었고, 때로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업무에 대한 책무감으로 갈등과 회의의 소용돌이 속에 흔들린 때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공자가 《논어》 〈위령공편〉에서 “자신을 꾸짖기는 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하길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하는 소리를 멀리할 수 있다(躬自厚而薄責於人,則遠怨矣).”라고 했듯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해야 함을 되새기고, 남 탓이 아닌 저의 부족함을 인식하며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 삶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그나마 독서와 글쓰기로 풀어내려 하였고,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내가 감당할 수만큼 신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딪히고 해결하려 하였으며, 세월이 지나면 모두 추억이 되리라는 미래 지향적 사고로 살아왔습니다.
보잘 것 없지만 저의 주요 행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첫째, 교내활동으로 평교사 29년과 수석교사 8년입니다. 아쉬운 것은 수석교사로서 마지막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함에 미련이 남습니다. 둘째, 교외활동으로 출제 및 평가위원으로 도교육청 정책 참여위원 등(다수), 교육지원청 평가위원(2회), 중등 신규교사를 포함한 각종 임용고사 출제 및 평가위원(4회), 각종 공무원 출제위원(4회), 수능 출제위원(1회)을 하였고, 사회(국가)·시민단체 및 봉사 활동으로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시민단체인 경실련 집행위원, YWCA상록수 강사, 속초시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봉사회 운영위원, 한국사회과교육학회 회원, 경동대 외래교수를, 교육부(교육과정평가원 포함) 및 교육청 각종 위원회 지원 활동으로2009개정교육과정 고등학교 교육과정 공동연구 참여 및 연구집 발간, 도교육청 및 교육지원청 각종 연수 강사활동(다수), 기타 수석교사로서 일선학교 연수지원 활동(다수), 그리고 몇 권의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지난 2월말 37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든 학교를 떠난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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