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개인전을 앞둔 2019년 4월 4일 밤, 강풍을 타고 번진 대형 산불이 고성 성천에 새로 마련한 그의 작업실을 휩쓸고 지나가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해 6월에 예정됐던 전시회에 선보이려고 혼신을 쏟아 그렸던 150호 대작 ‘속초 연작’ 네 점을 비롯해 40여점의 작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티벳, 인도 등지를 오랫동안 방랑하며 드로잉한 일곱권 가량의 스케치북과 그 드로잉을 밑그림 삼아 제작한 수십점의 유화들, 박기범의 동화 <미친개>와 <그 꿈들에>에 쓴 삽화까지 모두 불타버렸다. “물감 살 여력이 없는 형편에서도 끝까지 품고 있었던” 생때같은 작품들을 잃고 다시 붓을 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이재민 구호주택에서 다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화마로 2년이나 늦어진 세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됐다. 속초 화가 김종숙(사진) 씨 이야기다.
김 화가가 오는 2~9일 서울 종로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세 번째 개인전 ‘러빙 속초 버닝 속초’를 연다. 전시명은 김종숙 화가의 전시회 때마다 도록의 서문을 썼던 박인식 작가가 쓴 시 ‘러빙 고흐 버닝 고흐’에서 따왔다.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고흐 사후 100년째 된 1990년 뉴욕의 어느 경매장에 나온 ‘가셰 박사의 초상’을 1000억원에 가까운 8250만 달러에 낙찰 받은 한 일본인이 3년 뒤 숨지면서 함께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박 작가는 이를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 마침내 돈으로 사낸 사랑/ 러빙 고흐/ 돈으로 태울 수 없는 예술혼/ 마침내 돈으로 불타오른 예술혼/ 버닝 고흐(…)’라는 시로 썼다. 김종숙 화가의 작품을 보며 이 시를 속으로 읊고 있었다는 그는 “유화물감이 아니라 잿더미를 절망의 눈물에 이개 덧칠한 듯 이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도 현실적인 속초의 실존이 고흐의 예술혼과 맥락이 닿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산불의 아픔을 이겨내고 제작한 48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박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말린 생선 같이 꾸덕꾸덕하고 삭힌 가자미식해 맛 같이 쿰쿰한’ 그림들이다. 명태, 대구 등 생선과 꽃과 나무, 새와 염소, 고양이도 그렸고 동명항, 아야진, 양양장도 그렸고 아이와 뱃사람 등 사람도 그렸다.
“속초 산불 화염 속에 흔적 없이 불타버린 수백 작품들 한 점 한 점이 그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 산불로 그는 수백번의 죽음을 체험한 것이다.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 속초사랑의 붓들로 완성한 48점의 작품을 품고 이승으로 되돌아 온 이번 전시는 그의 환생 신고다.”(박인식 작가)
속초 청호동에서 태어난 김종숙 화가는 속초여고와 강원대 미대를 나왔다. ‘글과그림’ 동인으로 박기범 작가의 동화 <미친개>와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라크 소년들의 꿈을 담은 <그 꿈들>의 삽화를 그렸다. 2015년 2월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 ‘속초다’, 2017년 이른 여름 서울 서촌 갤러리291에서 두 번째 개인전 ‘그래도 속초다’를 열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동명항, 그물을 끌고·(150M) 227.3×145.5㎝·Oil on Canvas.
세 번째 개인전을 여는 김종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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