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필자는 세 개의 세상을 넘나들며 살아 왔다. 40년간 봉직한 교직생활과, 시를 통한 문학의 세상, 그리고 책읽기와 관련된 독서의 세계에서 나름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20여 년 전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뜻을 같이 하는 어른들과 만든 모임이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모임’이다. 그 모임에서 매달 4~5권의 그림책을 20년간 읽어 왔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사는 이야기’ 칼럼을 올해부터 세 가지 콘셉트로 쓰려고 한다. 하나는 기존처럼 우리 지역의 이슈를 필자의 시각으로 해석한 칼럼, 두 번째는 시(詩)를 주제로 한 ‘시(詩)로 풀어보는 시(時)시(市)한 이야기’, 세 번째는 ‘그림책으로 열어보는 세상 이야기’이다.
오늘은 다비드 칼리의 <어쩌다 여왕님>이라는 그림책을 가지고 세상을 열어 보고자 한다.
다비드 칼리는 <나는 기다립니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 <적>, <새 아빠 구함>, <왜 숙제를 못 했냐면요……>로 유명한 스위스의 그림책 작가입니다.
어느 날, 개구리들이 사는 연못에 반지 하나가 퐁당 떨어집니다. 개구리들이 반짝이는 물건을 찾으러 연못에 서로 뛰어듭니다. 그 중의 한 마리가 머리에 왕관을 쓰고 나타나자 다른 개구리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치며 말했어요. “개구리 여왕님이다!”
개구리 여왕님은 뭘 해야 할까요? 왕관 쓴 개구리조차 알지 못했어요. 그때 몇몇 개구리들이 여왕이 해야 할 일을 줄줄 늘어놓았지요. 이제부터는 다른 개구리들과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발이 젖지 않도록 널따란 잎사귀 위에 있어야 하고, 통통한 파리도 직접 잡지 말고 백성들이 신하들 몫까지 대신 잡아오라 시켜야 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벌을 내려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여왕과 신하들은 늘 배가 고팠으므로, 다른 개구리들은 끊임없이 파리를 잡아다 바쳐야 했어요. 여왕이 등장한 뒤 연못에는 노랫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개구리들이 스스로 파리를 잡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았고, 명령을 내리는 이도 없었지요. 당연히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벌을 받는 일도 없었고요. 마침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개구리들이 물었어요. “어쩌다 당신이 여왕님이 된 거죠?”
그러다 연못의 연례행사인 다이빙 대회에서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온 여왕의 머리에서 반짝이는 왕관이 사라져 버리자 개구리들은 다시 자신을 위해 파리를 잡고, 노래를 부릅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 그림책을 다시 펼쳐 보며 필자는 날마다 정쟁과 당리당략으로 시간을 죽이는 우리의 정치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어쩌다 000’, ‘어쩌다 ××××’가 되신 분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000’가 되어보려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인간 세상의 반지가 개구리 세상에서 왕관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명함에 새겨진 ‘어쩌다 000’가 왕관이 아니라 누군가에서 주어진 반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반지의 재앙’이 될 거라는 말장난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판에서 벌어진 몇몇 실제의 재앙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들만 뭐라 할 것이 아니라, 반지를 왕관으로 착각하는 우리 모두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어 ‘demokratia’가 어원인데, ‘국민이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1조에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반짝이는 왕관과 여왕이라는 단어에 홀려, 우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책을 덮으며 궁금해집니다. 저 먼 곳에 있거나, 아니면 내 가까운 이곳에 있는 ‘어쩌다 00’님들은 이런 책을 읽을까?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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