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올 추석에 느닷없이 우리 안방과 정치권의 논쟁 한복판으로 불려 나왔다. 소크라테스(BC470-399)가 살다간 시대도 요즘처럼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 중에 태어났으며, 30대에는 그리스가 아테네 중심의 델로서동맹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동맹으로 나뉘어 27년간의 내전에 휩싸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전쟁에 3차례 보병 병사로 징집되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투에 나갔으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펠로폰네소스전쟁 와중에 역병이 창궐하여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가는 참상을 소크라테스는 겪기도 했다.
사람들은 역병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로 건강도 재물도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쾌락을 즐기며 타락된 삶을 살아갔다. 또한 지금의 우리나라의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대결처럼 분열이 심했고 개인의 윤리의식이 타락했으며 민주주의가 부패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아테네의 일반시민들은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혼란하게 돌아가고, 왜 이토록 사는 것이 힘든 것인가” 하고 한탄하며 지혜를 구했다. 하지만 당시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자처했던 소피스트(Sophist)들은 현란한 말만 요란하게 펼쳐놓으며 시민들을 더 어지럽게 했다. 진리를 왜곡하는 궤변가들이 득세하여 보편타당한 진리는 사라지고 거짓과 궤변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다”라고 역설했으며 ‘불신앙과 청년의 유혹’이라는 두 가지 죄명으로 독배를 마시게 된다.
금년 추석 전날 저녁에 가수 나훈아는 그의 노래 ‘테스형’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말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고 노래하며 푸념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델포이(Delphoe)신전에 새겨져 있던 글인데 소크라테스가 이를 인용하면서 그의 명언으로 굳어졌다. 이 말은 자신의 무지(無知)를 먼저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니 나훈아가 그 말을 모르겠다고 한 건 자연스럽다. 작품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듣고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에서 나훈아는 세상이 왜 이리 살기 힘든지, 사람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 이유 좀 알려 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필자는 이 노래에서 가수 나훈아의 진짜 마음을 위의 가사에서 찾고 싶다. 1947년생 올해 74세인 가수 나훈아는 인생의 막바지에서 그의 아버지 산소 앞에서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70여년을 살아봤지만 자신이 누군지 또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1959년생 61세인 유시민은 1985년도에 대학생일 때 ‘서울대 프락치사건’의 배후자로 몰려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변호인은 항소를 했고 항소이유서를 유시민 자신이 직접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유시민은 무려 1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원고지 100장 분량의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다. 그 항소이유서는 몰래 복사되어 학생운동권에 배포되었고 운동권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당시 필자는 대구 영남대학교의 계장급 교직원이었고 운동권학생에게 그 유인물을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사건의 전말과 경찰 측 대처의 잘못된 점과 당시 정부의 무능한 점 등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논리 정연한 글의 표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잘 쓴 글이었다. 유시민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논객이자 노련한 정치인이다. 그가 뜬금없이 소크라테스를 들고 나왔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야당정치권의 공격에 소크라테스를 인용하여 방어한 것이다.
여하튼 대중은 근래에 가수 나훈아의 ‘테스형’과 유명한 논객 유시민의 ‘소크라테스’를 동시에 접했는데, 정치적 성향에 따라 느끼는 해석은 분분할 것이다. 당신의 해석은?
최영걸
속초시사회복지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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