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막달이 되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세초에 계획한 것들을 얼마나 이뤘나 돌아보게 된다. 세상은 코로나19로 흉흉해도 가는 세월을 어찌하랴! 그래서 주역에서는 이를 ‘천행건(天行健)’이라 하였는데 “하늘의 운행은 강건하여 한 치의 어김도 없다”는 뜻이다. 신입생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한해가 지나간다. 이번 학기는 4학년만 맡아서 경기도 양주캠퍼스에 갈 일도 없고, 코로나19 때문에 캠퍼스 간의 교원이동도 자제하라는 특별지침이 내려졌다.
원래 계획대로면 올해 학과가 마무리되는 대로 경기도로 이사를 가려고 준비했었다. 그런데 덜컥 가을학기 개강시점에 예상치 못한 보직발령이 있었고, 지역사회와 연계를 통한 평생교육대학의 활성화라는 과제를 부여 받았다. 사람의 계획은 그야말로 계획에 불과한 것이어서 유동적이고 가변적이어서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여건과 상황은 수시로 변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는가?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추억이 된다고 했던가!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하도록 정든 설악에서 지나온 많은 시간들이 감사로 기억되는 세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힘겹게 터널을 빠져나오면 “죽다가 살아났다”고 말한다. 고비를 넘겼으면 감사하면 될 것을 구태여 완고한 표현을 쓴다. 어려워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자기중심이다. 계획대로 아니 되면 자기를 살피고 반려된 계획에서 하늘의 뜻을 구해야 옳다.
사람의 계획은 또 얼마나 제한적인가?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지금 대학은 팬데믹과 함께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신입생 모집이 빨간불이다.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한다.”는 말이 관용어가 되었다. 위기를 극복할 면밀한 계획과 대학의 차별화 전략 그리고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다. 교수사회도 불안요소가 점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테뉴어(tenure)를 받은 것도 감사하다. 그 때만해도 지금처럼 교수사회가 어렵지 않아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교수의 트랙도 세분화되어서 누가 어떤 트랙에 속하는지 알기도 어려운 세태가 되었다. 그러면서 항상 넘어야할 산이 연구실적과 성과평가이다.
계획하고 연구해야 대응할 수 있다. 오로지 개인 몫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초중고 교사는 한번 임용되면 정년까지 가는데, 왜 대학교수만 몇 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거쳐야 하는 거야? 연구논문실적, 교수강의평가, 취업지도실적에 부담을 갖는 후배교수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이런 불공평을 하소연해도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사람의 계획과 다짐이 얼마나 허술한가? 그래서 작심삼일(作心三日) 대신 작심이일(作心二日)로 분할 정복하란다. ‘디바이드 앤 컹커(divide & conquer)’ 원리라고 말장난을 한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실천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 지행일치(知行一致), 신행일치(信行一致), 학행일치(學行一致), 교행일치(敎行一致), 의행일치(意行一致), 사행일치(思行一致), 그래서 자기와의 싸움, 자기를 강화는 일에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실천이 더더욱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러니 계획했으면 힘써야 한다.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거저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 고난 없이 면류관 없다. 사람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그런 의미이다. 지난주 코로나19로 긴장감 속에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수고하고 공부한 대로 성적표를 받게 될 것이다.
한 신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고 철야기도만 했다. 그리고는 백지 답안지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썼다. 교수님은 채점란에 “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 학생은 모르니 0점”. 내가 100을 힘쓸 때, 하늘이 100을 돕는다. 줄탁동시(啐啄同時)도 그런 의미다. 오늘 계획하고 달라진 하루를 살면 새해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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