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 관광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속초시는 지난 3월부터 공모에 들어가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을 속초시관광종합개발계획수립 용역업체로 선정하고 조만간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계약 예정금액은 2억6천4백만원이며, 용역기간은 1년이다. 이에 따라 내년 3월까지는 중간보고회 등을 거쳐 계획안이 수립되고 6월까지 관광특구 관련 계획이 추가 수립되어 6월경에 최종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최소 10년의 기간이 포함되는 이 계획은 비록 법적인 효력을 갖지는 않지만, 법령에 따라 세워지는 속초시의 각종 개발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다.
반영 안 된 관광특구종합발전계획안
속초시가 관광개발과 관련해 독자적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설악권 관광특구 지정 이후인 1995년 교통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설악권 관광특구종합발전계획안을 수립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많은 개발사업이 속초의 주력산업인 관광산업 활성화에 포커스를 맞춰 추진되었지만, 보다 체계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추진되어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이런 점에도 난개발을 막고 올바른 관광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려도 없지 않다. 계획과 실제 개발사업이 따로 진행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1995년 설악권 관광특구 발전계획안은 실제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해외 아이템을 복사해 내놓은 계획들이 지역현실에 맞지 않았으며, 소요예산 확보조차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속초의 각 관광지별로 특색있는 테마공간을 구성하자는 당초의 문제의식은 완전히 무시되어 무분별한 관광개발이 계속 줄을 이었다.
그동안 행정에서 속초관광에 대한 미래 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청사진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고 지역의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시행착오가 계속 잇따랐다.
당초 청초호와 속초항 매립사업은 신수로를 개설하고 구수로를 매립할 계획이었으나, 구수로와 갯배를 계속 유지해야한다는 시의회의 제동으로 사업계획이 변경되었다. 당초 매립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속초의 관광명물인 갯배는 사라졌을 것이다.
속초시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으로 시작된 청초호유원지 개발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청초천 하구 철새도래지는 모두 사라질 상황이었다. 무분별한 매립과 환경훼손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계획이 수정되어 그나마 철새도래지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졌다.
청초호유원지 매립토를 확보하기 위해 속초의 관문인 대포항 산두꺼비 산을 깎아내고 주차장을 조성한 것은 즉흥적으로 시가 추진한 대표적인 난개발 사례로 손꼽힌다. 주차장 조성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다를 매립한 대형주차장이 조성되어 지금 이 주차장은 흉물스런 절개지와 함께 제대로 활용도 되지 않고 있다.
속초의 관문인 설악산 입구도 마찬가지이다. 당초 1996년 관광특구계획에는 다른 항포구나 해안과는 차별화된 테마공원으로 조성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속초시는 국비 지원을 받아 탐방객이 찾지 않는 전망대와 주변조경에 50억여원 이상을 퍼부었다.
최초로 관광항으로 개발된 대포항은 무리하게 사업을 벌여 사업의 수혜를 받아야 할 어민들은 오히려 개발 전부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그리고 속초시 관문인 대포항 일대는 고층 호텔에 바다 조망이 가려 소중한 자연경관을 잃게 되었다.
구 수협 철거·청초호변 41층 호텔 건립
속초시는 강원도 18개 시군 중에서도 면적이 가장 적고 역사적 유적도 많지 않다. 하지만 바다와 호수에 접한 도시의 특성으로 자연경관이 살아있는 도시관광지로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매력적인 도시관광자원이 부족하다.
지금 구 수협 건물을 보존해 지역의 부족한 문화관광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미 속초시는 건물 철거를 위해 예산을 세웠다. 이대로라면 올해 하반기에 건물이 모두 철거될 상황이다.
청초초유원지 조성은 석호 매립이라는 비난에도 추진된 속초시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다. 유원지에 들어설 모든 건물의 층수를 도시관리계획에 명기하여 규제한 것은 유원지의 경관과 쾌적함을 지키려는 의지였다. 그럼에도 속초시는 자신들이 세운 계획을 무시하고 청초호 철새도래지 바로 옆 12층 높이로 제한된 곳에 876실 41층 호텔 건축 허가를 내주려고 절차를 밟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속초의 관광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중대한 현안을 결정해 놓고 속초시 관광개발계획을 따로 세우겠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토목 중심의 관광개발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속초 관광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에 입각해 중요한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구 수협 철거와 청초호변 41층 고층 호텔 건립 문제를 속초 관광지 청사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결정하자. 더 이상 계획은 계획대로, 난개발은 난개발대로 진행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이제는 제대로 하자고 속초시 관광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엄경선 설악닷컴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지금은 속초 도시관광의 효자로 자리잡은 갯배. 당초 계획대로 청초호 구수로를 매립했더라면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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