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께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바둑을 정말 게임처럼 재밌게 가르쳐줘서 이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고 이세돌 9단이 된 것 마냥 즐거워요.”
양양지역의 어린이집원생들과 초·중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중독에서 벗어나, 바둑 배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양양바둑의 산증인인 이장섭 바둑명인이 제안해 양양군체육회와 함께 올해 시작한 어린이·청소년 바둑교실이 사고력과 논리력,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하며 ‘바둑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기존 바둑판에 더해 강의용 전자바둑판도 활용해 이세돌 9단이 AI와 대결한 것처럼 다양한 게임요소를 첨가함으로써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바둑 두는 재미에 흠뻑 빠져 들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2020년 청소년수련관 바둑강좌’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7주 동안의 휴강을 마치고 지난달부터 초중등 24명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간씩 이장섭 양양군바둑협회 전무이사와 외부강사 1명이 강사로 나와 청소년들을 오묘한 바둑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한 ‘2020년 양양군 유치부 바둑교실’에는 공립 이솝어린이집(월·금)을 비롯해 강현어린이집(화·수), 디모테오어린이집(화·금), 서문어린이집(월·수), 하디어린이집(수·목) 등 5개의 어린이집에서 평일 6세 50명, 7세 50명 등 100명의 어린이가 참여하고 있다. 이장섭 바둑명인이 강의 시작 전후 인사하기와 명상, 수담, 마스크 쓰기 등 바둑예절을 알려주고 강의용 자석바둑판으로 배운 내용 복습하기, 학습 진도에 따른 조이스쿨 ‘씽크탱크’ 동영상 시청 등 다양한 테마로 진행돼 만족도가 높다.
61세 스승과 7세 제자의 교감 무대
지난 16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공립 이솝어린이집의 바둑교실에는 7세반 11명의 원생들이 참여해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이장섭 강사를 스승님으로 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서로 예의를 갖춰 큰소리로 인사를 나눈 61세 스승과 7세 제자들은 곧바로 바둑판을 펴고 전에 배운 내용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눈높이에 맞는 교감을 이뤄갔다.
이장섭 강사가 “여러분, 이렇게 단수를 치면 상대편의 돌이 어떻게 될까요?” 묻자, 어린이집원생들은 하나같이 “우리 집이 더 넓어지면서 포석하기 좋아져요!”라고 우렁차게 대답하며 자석강의판이 뚫어져라 집중했다.
이어 진행된 1대1 맞춤형 실전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신난 표정으로 바둑판을 깔고 흑백으로 돌을 나눠 프로기사 못지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국을 익혔다.
이장섭 강사의 특출한 바둑강의 실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도 바로 실전에서다. ‘바둑은 실력이 아니라, 인성’이라고 줄곧 가르쳐온 이 강사는 유치원생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둑을 두는 엄연한 독립적인 인격체라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존중하면서 소통과 공감에 나섰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들이 격의 없이 지내면서 어느 새 진도는 돌의 활로부터 시작해 단수치기, 집 만들기, 포석두기3까지 진행되고 있다.
바둑강의가 10분을 지나고 약간 지루해질 듯하자, 누구보다 어린이집원생들의 마음을 잘 아는 이 강사는 수강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공지능 온라인 바둑프로그램 ‘나는야 바둑 왕’을 시작한다. 유치원생들은 이내 나눠준 테블릿PC를 들고는 환호성을 지른다. 모든 수강생들이 AI와 대결하는 이세돌 9단처럼 진지한 얼굴로 바둑돌을 둔다. 가끔 궁지에 몰린다고 생각하면 번쩍 손을 들어 스승인 이 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하는 유치원생들은 30분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집중력 있게 바둑판에 자신만의 집을 차곡차곡 만들어간다.
이솝어린이집 김성현(7) 어린이는 “처음엔 바둑이 어려웠는데, 스승님이 알기 쉽게 원리를 가르쳐주셔서 신나고 재밌다”고 미소를 지었다. 친구인 김주아(7) 어린이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바둑을 집에서도 온라인으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즐거워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바둑에 흥미를 보이면서 학부모들의 반응도 뜨겁다.
최종희 공립 이솝어린이집 원장은 “원생들이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주 의젓해졌고, 논리적인 사고는 물론 수학적인 셈도 빨라지는 것 같아 교육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인성함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 흐뭇하다”고 말했다.
김진하 군수·체육회 적극 뒷받침
양양바둑교실이 이처럼 인기리에 운영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인재육성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김진하 군수와 이상구 양양군체육회장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자리하고 있다.
평소 예의와 인성을 최고의 교육 가치로 꼽는 김 군수는 생활 속에서 올바른 습관을 기르는 데 바둑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해 바둑교실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맞춤형 지원을 약속했고, 양양군체육회도 바둑인구 저변확대와 두뇌계발 등을 목표로 테블릿PC 임차, 바둑판, 바둑왕 프로그램 4개월 이용권 등 다양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상구 체육회장은 “우리 지역의 바둑명인이 강사로 나와 다음 세대를 위해 애쓰는 모습에 지역의 미래가 한층 밝게 느껴진다”며 “옛말에 공부하는 자식 뒷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처럼 바둑으로 인성을 쌓아가는 후배들이 정말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이장섭 바둑강사와 공립 이솝어린이집 원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마치 이세돌 9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돌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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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으로 건강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이장섭 바둑명인, 작년 공직 퇴직 후 봉사 실천
양양에서 바둑명인으로 통하는 이장섭 강사는 현재 양양군바둑협회 전무이사로 활동하며 바둑을 매개로 다음세대를 잇는 가교역할에 여념이 없다.
송포초교와 양양중·고, 관동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건축직으로 양양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12월 제40대 강현면장을 끝으로 34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바둑애호가로 양양바둑이 올해 강원도지사기대회에서 5연패의 금자탑을 달성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 역할을 했다.
한국기원 아마 4단증과 대한바둑협회 4단, 바둑심판자격증 3급, 스포츠바둑지도사 1급 등 건축전문가면서도 탁월한 바둑실력을 겸비한 그는 퇴임 후에도 바둑을 통해 청소년들의 건전한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실천하며 제2의 인생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성적보다는 인성이 먼저’라는 가치관으로 바둑을 통해 건강한 지역공동체 만들기에 활기찬 여정을 보내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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