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음식과 음식문화 중에서 재료, 담는 방법, 먹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가장 복잡한 것은 무엇일까. 삶은 것도 좋고 데친 것도 좋으며, 날것과 풋것을 한곳에 담아도 좋아, 먹을 수 있고 담아낼 수 있는 것이면 아예, 이도저도 가릴 것 없이 다 좋다. 더욱이 누구든 이를 무심한 듯 마구 섞어서 비벼대도 맛의 균형미까지 기가 막히게 존재하여, 이 맛을 싫다고 하는 이가 없을 정도여서, 이렇듯 ‘명의와도 같은 음식’이 ‘비빔밥’이다.
재료의 색상은 푸른색, 붉은색, 흰색, 노란색 등 칠보색의 계절 나물을 담고, 재료를 담을 때는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을 시작으로 해가 지는 서북쪽 방위에 따라 놓는 순서를 따른다. 또한 푸른색의 나물처럼 휘어지거나 곧은 재료는 동쪽, 붉은 색의 고추장은 남쪽으로 사방위에 따라 놓는데, 여기에 양(陽)기운을 뜻하는 홀수의 숟가락과 음(陰) 기운을 뜻하는 짝수의 젓가락까지 갖추고,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 이렇듯 재료와 조형, 배치와 색깔은 물론 방위까지 따지는 가장 복잡하고 가장 난해한 음식이 비빔밥인 것이다.
냄비에 비벼 먹는 가리비 비빔밥
이렇게, 음식 하나에도 질서와 균형을 담고자 했던 비빔밥이 오랫동안 우리의 음식문화에서 가장 편안하고 보편적인 음식으로 대중화 된 이유는 바로, 이것저것 아무거나 마구 섞어 비벼 먹는 속성 때문이다. 이 또한 각 지역에 따라 재료가 서로 다르고, 맛도 모양도 다르다. 전주비빔밥은 양지머리 육수로 밥을 짓고, 날씨가 추운 황해도 해주비빔밥은 돼지기름에 밥을 볶으며, 안동비빔밥은 ‘헛제사밥’이라 하여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비빔밥으로 하고, 해산물이 풍부한 통영비빔밥은 조개나 홍합 등을 끓인 물에 나물이나 채소를 데쳐 양념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중 통영지방처럼 해산물이 풍부한 속초에도 비빔밥 음식이 여럿 있긴 해도 유독, 해산물을 이용한 비빔밥은 드문 편인데, 이마트 앞의 ‘게가 날 찜한 날’(638-6541)에서 맛 볼 수 있는 강된장에 비벼 먹는 ‘냄비 가리비 비빔밥’이 독특하여 즐겨 먹을 만하다. 이곳은 가리비 전문점으로 활가리비 도·소매와 함께 가리비구이까지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데, 가격대비 양에 있어 속초에서 가장 저렴한 곳이기도 하다. ‘냄비 가리비 비빔밥’은 강된장에 비벼 먹는 메뉴이다. 비빔밥의 주재료는 가리비로 조선시대 함경도에서는 흉년에 부족한 곡식대신 먹었던 구황식품이다. 밥을 푸거나, 누룽지를 긁을 때 사용하기도 하여 ‘밥조개’, ‘주걱조개’라고도 했던 조개로, 이를 푸짐하게 담아 낸 ‘냄비 가비리 비빔밥’이다.
버터·소금에 가리비 볶아 감칠맛
‘냄비 가리비 비빔밥’은 대접에 담아내지 않고, 특이하게도 냄비에 담아낸다. 비교적 폭이 비좁은 대접보다는 넓직한 냄비가 비빌 때 덜 불편하다는 주인의 작은 배려인 듯싶다. 생각보다 푸짐하게 담아내는 가리비 살도 놀랄 만한 데, 주재료인 가비리살 조리법도 이채롭다. 삶은 가리비를 잠시 식혀 두었다가 칼을 쓰지 않고, 먹기 좋은 크기로 손으로 쭉쭉 찢어 버터와 소금을 두르고 볶아 고명으로 얹는다. 칼을 쓰지 않는 것은 연하고 담백한 살맛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서이고, 한 번 더 볶아 내는 것은 해산물의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냄비에 가늘게 채 썬 양파, 부추, 상추, 당근 등을 두르고 가운데에 준비해 둔 가리비 살을 푸짐하게 얹어 내온다. 양념장은 초고추장이나 양념간장이 아니라, 자박하게 끓인 강된장이다. 채소들과도 당연히 잘 어울리지만, 담백하고 부드러운 가리비 살과도 대립되지 않게 맛이 조화롭다. 맛의 표정이 살갑게 도르라지고, 식감도 부드러운데, 유독 얇게 저민 오이무침 몇 조각이 ‘냄비 가리비 비빔밥’의 맛을 더 없이 감칠 맛나게 해준다. 가리비를 얹은 비빔밥 한 그릇의 풍미가 더 없이 감칠 맛 나는 이곳의 ‘냄비 가리비 비빔밥’이다. 시민기자
짭조름한 강된장에 비벼 먹는 냄비가리비비빔밥.
가리비 살을 버터와 소금에 볶아 내 감칠 맛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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