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거리의 가로수들이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는 계절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의 잔해들만이 지난 여름날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벌써…’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올해는 년도 표기의 십 단위 숫자가 바뀌는 첫해였는데 정말 어떻게 한 해가 지나가는지 모르게 온통 어수선하고 울퉁불퉁하게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말 그대로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날 지경인 한 해인 것 같다. 잠잠해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대유행의 시기가 오고 또 다시 반복되고, 도통 맘 편할 날이 없는 한 해였다. 처음 코로나가 발발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온 나라가, 온 세계가 영향을 받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가 다가도록 길게 이어질 줄도….
이 즈음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역사관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도전이 없는 곳에는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제시했던 예 중 하나가 ‘도도새’이야기다.
도도새는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 서식하던 새였다. 이곳에서 이 새는 천적이 없었고 먹이가 풍부했기에 오랫동안 아무런 도전 없이 살았고, 하늘을 날아야 할 필요가 없어져 그 능력을 상실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이 새들은 도망도 못가고 멍청히 쳐다만 보고 있어서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도도’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후에 네덜란드가 이 섬을 유배지로 선정함과 동시에 쥐, 돼지, 원숭이 등이 배를 통해 들어오게 되었다. 이 동물들이, 땅위에 둥지를 틀고 한 번에 한 개씩만 낳는 도도새의 귀중한 알을 훔쳐 먹게 되었고 결국 ‘도도새’는 멸종하고 만다.
또 하나의 도전과 응전의 예로 나일강 문명을 들 수 있겠다. 나일강으로 이주했던 초기 인류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알아내기 위해 천문, 지리, 태양력 등을 발달시켰고, 강이 범람할 때마다 쑥대밭이 되곤 했던 나일강 주변의 토지를 나누기 위해 기하학, 측량술을 발전시켰다. 거기에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술, 도르래, 축대 쌓는 기술이 더해져서 불가사의한 피라미드의 건축으로 이어진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는 끊임없이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봉착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에 따라 개인도, 조직도, 국가의 운명도 달라진다. 가만히 살펴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전 지구적인 도전에 대한 각국의 응전도 천차만별이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K-방역’. 지난 4월 총선을 무탈하게 치러냈고 몇 번의 위기는 있었으나 그래도 대다수 국민들이 따르고 협조하며 헌신하고 있는 이 모습들은 우리에게 닥친 이 중차대한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에 관한 모범 답안 같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 개인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도전과 응전의 연속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전은 우리 삶속에서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이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시련과 고통이다. 그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어떤 사람들은 고통스럽다고만 느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힘들지만 버틸 만하다고 느낄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속에서 기쁨과 교훈을 찾을 것이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고 한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서로의 노고를 격려할 수 있는 자리들이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된 사상 초유의 연말. 필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힘든 이 시기들을 잘 이겨내고 유능한 사공이 되어 의미 있는 시간들로 지금을 채워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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