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풍요로움을 뜻하는 계절이지만 올해 태풍과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농민들은 그리 즐겁지 않은 가을을 보내고 있다.
고성군 죽왕면의 한 농민은 “올해는 쌀 생산량이 30% 정도 줄었다”면서 “농자재비 상환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죽왕면의 또 다른 농민도 “올해 작물 수확이 전반적으로 30% 정도 감소했다”며 “가을에 누리는 넉넉한 만족감은 줄었지만, 자연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진읍의 한 농민은 “쌀 수확량도 줄었지만, 밭작물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며 “특히 깨는 작년과 비교할 때 수확량이 반으로 감소했고 감자도 속에 병든 게 많았다”고 했다. 깨의 심각한 피해는 여러 농민이 공통으로 짚었다.
토성면의 한 농민은 “올해는 고추, 토마토, 사과, 배 같은 과채류의 작황도 좋지 않다. 아마도 쌀보다 더 작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집중 호우가 특히 심했던 간성 흘리에서는 농민들의 상심한 목소리가 더 컸다. 흘리의 한 농민은 “채솟값은 올랐지만 팔 게 없으니 좋을 게 없다”며 “올해 농사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고 낙담한 어조로 얘기했다.
흘리의 다른 농민은 “흘리에서 배추, 상추, 무 같은 노지 농사는 80~90% 정도 망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태풍 피해 복구는 겨울에도 해야 하는데 눈이 많이 오면 복구가 힘들어 그것도 걱정”이라며 “피해가 컸던 가구는 아마도 내년 봄까지 계속 복구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또, 그는 “태풍 복구비 지원이 늦는 것 같고 복구 장비도 부족한데 이에 대한 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흘리의 한 농민은 “채솟값이 많이 오른 덕분에 태풍 피해가 크지 않았던 농민은 올해 농사 수입이 예상보다 그리 줄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양돈농가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작년부터 야생멧돼지들에게 확산됐던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고성 관내 돼지의 이동이 제한됐고 이로 인해 고성 양돈농가는 모돈 처리가 어려워 비용 부담이 컸다. 또한, 올해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린 멧돼지가 고성에서 연달아 발견되는 악재가 있었다.
반면 한우 농가는 대체로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던 외국산 소고기는 올해 코로나 여파로 수입이 줄었다. 수입 소고기는 국내산 육류보다 저렴해 외식 시장에서 많이 소비되는데, 올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식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는 재난지원금이 풀린 후 한우를 찾는 이들이 많아 정육점에 활기가 돌기도 했다. 고성의 한 한우업계 관계자는 “올해 같은 해가 없다. 어려움이 많던 한우농가가 모처럼 즐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한 한우농가에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구제역 등으로 한우농가가 특히 어려웠는데 이제 겨우 원상회복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달 초부터 진행되는 공공비축미 수매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들도 있다. 여러 농민이 올해 공공비축미 등급이 낮게 나왔다고 답답해하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고성사무소 관계자는 “수매 초반에 3일 정도 등급이 낮은 경우가 많았지만, 11월 중순인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볼 때 작년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등급이 매겨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지난 9월 태풍과 집중 호우에 파손된 흘리의 비닐하우스. 흘리에서는 아직도 태풍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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