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동해안을 강타한 태풍 루사 때보다도 상황이 안 좋네요.”
지난 21일 오전 속초 동명항 양미리작업장에서 만난 한 어민은 바다 상황을 묻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올가을 양미리 조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지만, 전혀 고기가 잡히지 않자, 태풍 루사 때 양미리가 거의 잡히지 않았던 지난 2002년 가을을 떠올리며 이같이 답한 것이다.
예전에 본보(2013년 9월 30일자)에 실렸던 ‘속초시의 연도별 양미리 어획량’ 분석 자료를 살펴봐도 태풍 루사 때와 비교하는 어민들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기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1년 1,594톤이던 양미리 어획량은 태풍 루사가 동해안을 강타한 2002년 가을에는 683톤으로 911톤(57.2%)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풍 루사 피해는 다음 해에도 이어져 2003년에는 어획량이 628톤까지 떨어졌다가, 2004년 1,392톤으로 올라간 후 조금씩 회복세로 돌아섰다.
어민들은 2002년 태풍 루사 당시 속초 연안의 바닷속이 육지에서 떠내려 온 각종 나뭇가지와 뻘(육지 흙) 등에 뒤덮여 어황이 부진했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도 제9호 태풍 마이삭과 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바닷속이 18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이날 5척의 어선이 조업에 나섰지만, 오전까지 어획량이 거의 없어 위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양미리작업장도 어선 1척만 그물에 걸린 양미리를 떼어내느라 조금 분주했을 뿐, 나머지 작업장은 어획량이 없어 한산했다.
이날 위판업무를 담당한 속초수협 직원은 “오늘은 아직까지 잡힌 양이 없어 정상적으로 위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오후에도 양이 없으면 위판 없이 오징어난전상가로 물량이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오늘로 조업 일주일째지만 정상적인 위판은 20일 하루뿐이었고, 나머지 6일은 위판 없이 물량이 오징어난전상가로 넘어갔다”며 “물량이 없다 보니 양미리가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했다.
올가을 첫 위판이 이뤄진 지난 20일에는 어선 3척이 모두 7통(60kg)의 양미리를 잡아 통당 21만원에 위판됐다.
수협 직원은 “어민들은 올해 윤달이 끼어 있어 조금 늦는 것 같다”면서도 “문제는 바닷속 상황이 태풍 루사 때와 너무 똑같아 2002년 때와 같이 양미리가 안 잡히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어민은 “양미리가 안 잡히는 데는 수온, 태풍의 영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문제는 바닷속 상황이 각종 나뭇가지와 뻘 등에 뒤덮여 있던 태풍 루사 때보다 더 안 좋다는 것”이라며 “수중카메라로 바닷속을 찍어 봐도 양미리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어민은 “속초지역이 큰 물난리를 겪었던 태풍 루사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더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 적자를 감수해 가며 조업을 계속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07년 1,187톤이던 양미리 어획량은 2016년 276톤, 2017년 171톤으로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늘어나기 시작해 2018년 455톤, 지난해에는 877톤으로 증가했다. 고명진 기자
지난 21일 양미리 작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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