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의 직업 선택이 문제가 된 지는 아주 오래됐다. 골방에 틀어박혀 각종 시험 준비에 몰두하거나 저임금 장시간의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사연은 기성세대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드문 경우이긴 하나 모범사례도 있다. 초인 같은 자세로 자신에게 주어진 악조건을 극복한 영웅적 인물은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어렵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현명하게 활용한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26세인 신성재 씨는 골방이나 숨 막히는 작업장, 사무실이 아니라 너른 들판을 그의 무대로 삼았다.
그는 8년 전에 부모와 함께 서울을 떠나 고성에 정착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신 씨는 부모의 귀농을 말렸으나 의지가 강한 부모를 설득하지 못하고 고성으로 오게 됐다. 그의 부모는 신용문·이민자 씨 부부로, 젊은 시절 각각 잡지사에서 사진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한 바 있다. 현재 부친 신용문 씨는 고성 귀농귀촌한마당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농업은 일과 삶의 균형 지킬 수 있어”
고성 귀농을 반대하던 신성재 씨는 불과 1년 사이에 생각을 바꿔 진로를 농업으로 정했다. 그는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과에 진학해 이제는 전문 지식을 갖춘 청년 농업인이 됐다.
신 씨는 농업인이 된 것에 크게 만족한다. 그가 가장 만족하는 점은 농업이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벨’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농업은 하루에 작업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농번기와 휴지기가 구분돼 일할 땐 열심히 할 수 있고 쉴 때는 푹 쉴 수 있죠. 그리고 농업은 야근을 하기가 힘든 직업이에요. 욕심내 일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일의 효과가 낮아지고 농산물의 품질도 나빠질 수 있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작업이 아예 안 되는 작물도 있고 작물이 성장하는 동안에는 쉴 수 있어요.”
신 씨는 쉬는 시간에는 자기 개발에 주의를 기울인다. 주로 농업에 필요한 기술을 공부해왔는데 신 씨는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해 아로마테라피와 드론을 공부했고 이는 그의 농업경영과 향후 계획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신 씨는 조만간 평창농업기술센터와 협력해 평창 농민들에게 드론 활용 기술을 전수할 예정이다.
신 씨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농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친구 중에는 취업준비생들이 많다. 요즘은 코로나로 취업이 더 어려워 친구들이 더욱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취업한 친구 중에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한 친구는 좋은 직장이라고 평가받는 은행에 다니지만, 야근을 자주 하며 고달픈 모습을 보인다.
상사가 없다는 점도 농업의 매력이다. 물론 농작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고객들이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들을 이해시키기가 힘들 때가 있긴 하다.
농작물 직거래…홍보 중점
신 씨의 주작물은 아스파라거스이고 부작물은 딸기, 수박, 초당옥수수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재배한 첫해부터 수확해버리면 좋은 상품을 낼 수 없기에 수익 창출을 위해 부작물을 정했다.
농작물 판매는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하기에 홍보에 중점을 둔다. 농사 1~2년 차에 생산한 농산물은 모두 홍보를 위해 전국의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지금도 농산물을 배송하면서 여분의 농산물을 더 보내 주문자의 주위 사람들도 자신의 농산물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홍보방식은 효과로 나타나 주문으로 이어졌고 올해 생산한 농산물은 다 팔았다.
신 씨가 직거래에 공을 들이는 것은 향후 그의 계획과 연결된다. 그는 지역 농업에 ‘콜드체인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준비 중이다. ‘콜드체인시스템’은 수산물, 육류, 청과물 등 신선한 식료품을 저온을 유지해 신선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산지에서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신선식품은 수확이 불안정하고 유통이 복잡한데 신선도 유지와 경비 절감이 관건이라 쉽게 접근하기 힘든 분야이다. 하지만 신 씨는 이런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기에 한 발 한 발 이를 향해 나아갈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의 협력을 도모하려고 한다.
“안정적인 농업인들은 변화에 소극적입니다. 저는 우리 지역에 귀농인들이 많이 오면 지역 농업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고성군도 귀농인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랍니다.”
소신 있고 성실하며 다재다능한 청년 농업인이 지역의 미래를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의 청년 농업인 신성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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