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우리 지역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동해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명태가 안 잡히면서 명태의 주산지였던 고성군 거진항을 비롯해 항포구 인구가 급격하게 줄었다. 바닷가 풍요의 상징이었던 명태가 사라지면서 사람 사는 마을도 황폐해졌다.
명태새끼 노가리를 왜 잡게 하는가
1990년 5월 28일자 <속초신문> 창간호 11면에는 동해안 최북단 명태 주어항인 거진항 소개 기사가 실렸다. 이곳 거진항에서는 매년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명태 성어기로 어민들은 새벽 4,5시에 일어나 약 16시간 정도를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도 명태자원의 고갈로 어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1년 4월 1일 자 <속초신문>에는 명태 새끼인 노가리를 잡도록 허용한 수산정책의 문제를 짚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는 1989년 국립수산진흥원에 의해 노가리를 명태새끼로 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부터 대두되었던 노가리가 명태새끼냐 아니냐의 문제가 다시 속초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어민들은 명태 어획량 감소의 주원인이 명태 치어인 노가리를 잡는 데 있어 어족보호 차원에서 규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형기선저인망어선조합 관계자는 “명태와 노가리는 어종이 다르다”며, “설령 노가리가 소형명태라고 해도 회유성이라 북상하기 전에 잡아서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1992년 11월 9일 자 <설악신문>에서는 명태가 안 잡혀 어민들이 울상이라고 보도했다. 10월 말 현재 동해연안 어획량은 2,150kg로 지난해 3,360kg에 비해 극히 저조한 실적이라고 했다. 명태어장이 형성되지 않아 출어 어선들이 빈 배로 귀항하거나 출어조차 하지 않았다. 거진항에는 명태잡이를 위해 대여섯 척이 출어 중이나 어획량이 저조했다.
1992년 12월 31일자 <설악신문>에서는 12월 15일까지 속초 1년 어획고를 집계해 보도했다. 명태는 845톤(15억6,000만원), 노가리는 3,678톤(44억3,700만원)이 잡혔으며, 어획고는 지난해보다 명태가 143%, 노가리가 173% 증가했다. 명태보다 명태 치어인 노가리를 4배 이상 잡았다. 같은 기간 오징어는 1만1,638톤(195억5,900만원)으로 속초항의 주요 어종이었다.
명태 안 잡혀 거진항 나락에 빠져
1995년 1월 16일자 <설악신문>에는 모처럼 명태가 잘 잡힌다는 기사가 실렸다. 1월 3일부터 뒤늦게 명태가 잡히기 시작해 고성 거진항을 중심으로 항포구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했다. 1월 9일까지 명태어획량은 연승 58톤, 자망 360톤으로 알이 좋고 선도가 좋아 20마리 한 두름에 5,500원에서 8,300원까지 거래되어 전량 서울 등 도시 수산시장으로 직송됐다.
그러나 희소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 후인 1995년 2월 13일자 <설악신문>에는 이번 겨울 명태가 안 나서 최악의 상황을 맞은 고성 거진항에 대해 심층취재 기사가 실렸다.
고성지역은 1994년 11월부터 다음해인 1월까지 명태 총 어획량은 1,900톤으로 역대 최악의 흉어를 기록했다. 특히 연승 어선들은 최악의 사태로 114톤밖에 잡지 못했고, 자망어선은 1,800톤을 잡았다. 어민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을 지경이고, 더 이상 사채 낼 곳도 없다고 했다. 명태잡이가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자 바다를 떠나 막노동을 하거나 타 도시로 나가는 주민들이 크게 늘었다. 고성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어가 수가 1991년부터 매년 200여 가구씩 줄어들었다.
고성군 수협에 따르면 1980년대 초·중반 1만톤 이상을 웃돌던 고성군 명태어획량은 1986년 2만톤 가까이 오르더니 다음해 6,900톤으로 떨어졌고, 1991년에는 2,000톤까지 곤두박질쳤다. 1994년 어획량은 2,600톤으로 1984년 1만6,000톤의 16%에 불과했다.
당시 국립수산진흥원 속초 어촌지도소에 따르면 명태의 적정 수온은 3~5도인데, 올 겨울에는 6~8도로 높아졌다. 북한 한류가 힘이 약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기선저인망에 의한 치어의 무분별한 남획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어민들은 명태 치어인 노가리를 기선저인망이 싹쓸이해서 명태알이 부화되기도 전에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고성군 1998년부터 어민들에게 구호미 풀어
1999년 2월 20일부터 3일간 고성군 거진항에서는 제1회 고성명태축제가 열렸다. 축제는 성황리에 진행되었지만, 정작 명태를 구경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축제를 앞둔 1991월 2월 1일자 <설악신문>에서는 고성지역에서 77일 동안 명태가 완전 바닥이라고 보도했다. 1998년 11월 12일 명태가 약간 잡힌 이후 겨우내 명태가 거의 잡히지 않았다. 명태가 안 잡히자 명태 1두름 가격이 최고 14만원까지 치솟았다.
명태가 나지 않자 지역 어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1998년 12월부터 명태흉어로 구호미를 풀기 시작했다. 1999년에도 거진읍을 비롯해 어민 787가구에 생필품과 성금이 전달됐다. 2000년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부금품 제공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명태 연승 어민 248가구에 쌀 40kg 구호미가 지원됐다. 당시 어민들의 생계곤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자 선관위에서도 방침을 변경해 구호미 지원을 허용했다. 2001년 5월과 12월에도 350여가구에 구호미가 지원됐다.
2002년 1월 설을 앞두고 명태가 37톤 잡혀 전년도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보통 2월 말이면 명태 조업이 끝날 철인데도 뒤늦게 명태가 잡혔다. 2월 26일 2,200두름, 2월 27일 1,750두름을 비롯해 2월에 207톤이 잡혔다. 대부분 알을 밴 명태로 두름당 2만5,000원~3만3,000원에 판매됐다. 2003년 2월 10일 <설악신문>에서는 고성지역 명태어획량이 2월 4일까지 156톤으로 지난해 75톤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고 보도했다.
2004년 2월 23일자 <설악신문>에 “명태잡기 활기”라는 기사가 실렸다. 모처럼 명태가 나서 고성 항포구가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명태 어획량은 전년 대비 15%에 불과했다. 이 기사는 이 무렵 명태 어획에 대한 마지막 기사였다.
7년 후인 2011년 5월 16일자 <설악신문>에 명태가 잡혔다는 기사가 실렸다. 명태 성어기가 아닌 5월 고성 아야진 소속 자망어선들이 5일간 470kg(597만6,000원)의 명태를 어획했다. 잡힌 명태는 마리당 6,200원에 팔렸다.
다시 7년 후인 2018년 12월 고성 공현진 자망어선 5척이 7일 동안 명태 1만9,156마리를 어획해 관심사가 되었다. 혹시 2015년 이후 인공 부화된 치어로 방류한 명태가 아닌지 이목이 쏠렸는데, 안타깝게도 자연산 명태로 밝혀지고 말았다.
수산행정, 명태 치어 보호해 달라는 어민요구 묵살
<설악신문> 기사를 통해 고성군 명태어획량을 정리하면, 1995년 4,500톤, 1998년 3,000톤, 1999년 1,100톤, 2000년은 930톤으로 줄었다. 그리고 2001년에는 62톤, 2003년에는 340톤, 2004년에는 72톤, 2005년 18톤, 2016년 8톤, 2007년 1톤, 2008년 0.65톤으로 감소했다. 2015년에는 0.6톤을 기록했다.
공식적인 국내명태 어획량은 2008년 1톤 미만으로 절사하여 0톤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매년 명태 어획은 평균 1~2톤, 많아도 10톤 미만이다. 2019년 명태 포획금지 이후 다시 0톤을 기록했다.
명태 자원 감소에는 수온의 변화 말고도 수산행정 당국의 책임도 크다. 행정당국은 이미 1989년 노가리가 명태 치어라는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음에도 명태 치어 포획을 금지하지 않다가 1997년이 되어서야 10cm 미만의 명태를 포획금지토록 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03년 9월 27일에는 포획 금지 체장을 10cm에서 15cm로 확대했다. 다시 2007년 1월 15일 수산자원보호령 개정으로 명태 포획금지 체장이 15cm에서 27cm로 변경되면서 사실상 저인망의 노가리 어획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명태 씨가 말라 거의 잡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뒷북치기 수산행정이었다.
명태가 나지 않던 1990년대 이후 어민들은 명태 치어 남획을 막아달라고 행정당국에 수차례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2003년 9월 27일 수산자원보호령 개정을 앞두고 고성군 어민과 군의원들이 나서서 명태 포획금지 체장을 34cm로 크게 올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월 21일 수산자원보호령 개정으로 명태 포획이 1년 내내 금지됐다. 더 이상 공식적으로는 국내산 명태를 잡을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게 됐다. 2010년부터 10년째 명태살리기프로젝트는 진행 중에 있지만, 아직 방류 명태가 잡혔다는 소식은 없다. 언제 다시 <설악신문>에서 명태가 많이 잡혀 어민들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는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기다림이 참 오래간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5년 1월 16일 자 설악신문 1면에 실린 아야진항 명태 작업 사진.
1995년 2월 13일자 설악신문에 실린 고성군 역대 명태 어획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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