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뉴스홈 > 기획특집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설악신문 30년, 다시 보는 그 시절<24> / 소망 담은 민속 - 풍어제와 성황당, 거리제사, 미륵불
등록날짜 [ 2020년09월28일 12시07분 ]

1990년대에는 지역 민속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설악신문>에는 마을의 번영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와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 구복을 기원하는 토속신앙까지 지역의 다양한 민속과 신앙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 기사를 보면 <설악신문>이 지역의 민속에 대한 기록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기사를 요약 정리했다. 서낭당과 성황당 표기는 당시 기사에 나온 원문을 따랐다.

대진풍어제 (1990.11.26.)
1990년 11월 18일부터 3일간 대진항에서 풍어제를 지냈다. 3년 만에 열리는 풍어제는 11월 18일 새벽 3시 부정이 없는 세 사람을 골라 제주로 각각 3개의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풍어제를 시작했다. 대진항에서 모시는 성황신은 모두 셋인데, 남자 서낭신 영감과 여자 서낭신인 첫째부인, 둘째부인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13호 신석남씨를 비롯해 9명이 부정굿을 시작으로 3일 밤낮 동안 총 13마당의 굿을 펼쳤다. 풍어제나 마을굿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동시에 마을의 큰 잔치 역할을 하고 있다.
옛날 언제인가 대진항의 옛 마을인 황금리 앞바다에 고기가 잡히지 않고 농가에는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퍼져 민심이 흉했다. 어느 날 마을사람 꿈에 서낭신이 나타나 이 마을에 3개의 성황당을 짓고 풍어제를 지내면 흉한 일들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후 대진에서는 3년에 한 번씩 풍어제를 지낸다고 전해 온다.

우리 고장 민속 별신굿(1992.9.7.)
우리 고장에는 별신굿(풍어제)이라는 마을 공동의 굿이 있다. 별신굿은 부산에서 고성에 이르는 동해안지역 어민들의 풍어를 비는 부락제 겸 풍어제이다. 3년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별신굿은 대체로 넓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굿당을 만들며, 굿당 안에는 종이로 꽃을 만들어 제단을 만들고 제상을 차린다. 별신굿은 열두거리로 치르는데 열두거리란 열구대의 서로 다른 성격의 신을 모시는 작은 굿을 열두 번 반복해서 한다는 뜻이다. 이중 세존굿은 자손이 번창하도록 비는 것이며, 대감굿은 마마나 홍역 등의 질병을 막기 위해 치러진다.
속초지역 별신굿을 주도해온 빈순애(청호동, 당시 38세)씨는 “별신굿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뒷풀이굿인데 그 이유는 뒷풀이 과정에서 모든 잡귀들을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북지역 별신굿판에서 벌어지는 지전춤은 활발하고 격렬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속초에서 마을단위의 굿을 행하고 있는 곳은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청호동, 동명동, 대포동, 외옹치 등이며, 3년에 한번 씩 굿판을 벌이고 있다.

거진풍어제(1995.9.11.)
거진항 어민들은 올해 명태철을 앞두고 풍어제를 올리면 고기떼가 몰려들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간절하다. 하지만 재정과 성황당 보수 문제로 선뜻 못 나서고 있다. 거진풍어제는 3년마다 음력 3월 박사(또는 무녀)로부터 좋은 날을 받아 3일간 지낸다. 올봄에 풍어제를 지냈어야 하는데 열지 못했다.
마을 어른들은 거진풍어제는 아득한 옛날 바다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죽은 남편을 언덕에서 기다리다가 죽은 젊은 여인의 고혼을 달래던 제사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풍어제 날이 잡히면 성황당을 지키는 마을 어른의 집을 도가로 정하고 주변에는 소나무를 꺾어 왼새끼줄을 꼬아서 만든 금줄을 걸어놓고 제물을 준비한다. 풍어제는 큰 성황당에서 열다가 근래에는 항구 위판장에서 열고 있다. 3곳의 성황당을 돌면서 할아버지, 큰할머니, 작은할머니 성황신을 모셔다 굿판을 벌인다. 모두 14거리 굿을 순서에 따라 진행한다. 등대산과 거진항 뒷산에는 큰 성황당과 작은 성황당이 있다. 큰 성황당은 할아버지와 본처 큰할머니, 작은 성황당에는 할아버지와 후처 작은할머니가 모셔져 있다.
 성황당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성황이 가운데 앉아있고, 양 옆으로 술과 떡, 닭, 과일을 상에 받쳐 든 시녀와 큰칼을 찬 무관이 서 있는 6폭 그림이 걸려있다. 30년 전에 함씨라는 사람이 그렸다고 한다. 큰 성황당은 6.25전쟁 때 부서진 것을 30년 전 어민들이 돈을 모아 복원했다.

성황당이 지켜온 외옹치마을(1996.9.30. 추석특집)
강원도 내 장승이 남아있는 곳은 춘천시 동면과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마을 단 두 곳뿐이다. 외옹치 마을 진입로 좌우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다정하게 서있다. 올해 새로 개설된 도로 쪽으로 옮겨 세울 계획이다.
외옹치마을에서는 성황제가 치러지는 해에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고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장정들이 마을산에서 좋은 소나무를 베어다가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를 살려 익살과 위엄이 넘치는 장승을 깎아 색을 칠하고 솟대(오리대)도 만들어 세운다. 외옹치마을은 매년 음력 3월과 9월 두차례 마을 시제를 지내고, 3년에 한 번 마을 대동제(부락제)를 지낸다. 외옹치 성황제는 장승제와 성황제, 풍어제 순서대로 지낸다. 성황당 지킴이 김옥순(59세) 무당이 대나무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신내림을 받는 골메기굿을 올리며 진행된다.
대나무에 모셔진 신을 성황당으로 모셔와 본격적인 굿을 진행한다. 성황제를 끝내고 부둣가에 내려와 용신을 맞이하는 풍어제를 지낸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어부의 가족들은 메를 지어 한 상씩 차려 명복을 빌며 무당이 뒷풀이굿을 한다.

고성군 오정리 거리제사(1995.1.2.)
거진읍 오정리 마을에는 객지에 나가 죽은 영혼들을 달래고 거리의 잡신을 위로해 가정과 마을의 안녕을 가져오는 거리제사 풍습이 남아있다. 거리제사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이 지난 후 좋은 날을 택해서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전 주민이 모여 치성을 드리고 한마당 잔치도 벌였던 큰 행사였으나 요즘은 마을 어른들과 이장 정도가 참가하는 제례로 축소되어 맥을 유지해 왔다.
새해를 맞는 정월 초승에 안락동에 모신 암서낭(여신)과 삼정현의 숫서낭(남신)에 치성을 올리는 산천대제를 먼저 지낸다. 마을의 젊은 부부들 중 두 부부의 생기복덕이 가장 잘 일치하는 날을 제례일로 잡고 그 집을 도가로 정해 제례음식을 준비한다. 제사에 쓸 술을 직접 빚어 준비한다. 제사일이 되면 축관과 헌관은 짚을 왼쪽으로 꼬아 남신과 여신을 만들어 제당에 모시고 돼지머리를 올린다. 6.25전쟁 이전에는 소머리를 올렸다. 제를 올리고 짚으로 만든 여신과 남신을 제단에 합궁시킨다. 다음날 두 신을 안락동과 삼정현 서낭산에 각각 모시고 소지를 태우고 산천대제를 마친다. 산천대제를 마치고 정월 보름이 지나기 전부터 거리제사를 지낼 준비를 한다.
거리제사는 제관이나 축관이 따로 없다. 가가호호 탕과 메, 초를 올린 제사상에 마을 앞길에 한 줄로 나란히 차려놓는다. 이때 산천대제 때 정한 도가에서는 개를 잡아 제물로 올릴 준비를 한다. 각 가정마다 멀리 나갔던 가족이 돌아오고 집집마다 제상을 차려 해질 무렵에 거리제사를 시작한다. 한 줄로 쭉 늘어선 제사상 가운데에 개를 통째로 올린 상을 놓는다. 마을이장이나 큰어른이 나와 간단히 제례를 하고 소지를 올린다. 준비한 제물을 이웃간에 나누며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소지가 제대로 오르지 않는 집에서는 어머니들이 밤새 치성을 드린다. 
 
고성 인흥리의 미륵석불(1995.2.20.)
고성 토성면 인흥2리에서 16대째 살고 있는 박씨 집안에서는 1백50여년 전부터 4대째 미륵불을 모시고 살아왔다. ‘미륵할머니’로 불리는 미륵불은 돌덩어리를 거칠게 쪼아낸 석불로 두 눈과 코가 움푹하게 패여 있다.
시할아버지대인 1백50년 전부터 미륵불을 모셨다는 최성녀 할머니(당시 82세)는 “하루는 시할아버지 꿈에 쌍무지개가 뜨고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미륵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 오셨으니 잘 모시라고 해서, 날이 밝아 지팡이를 짚고 뒷개울(봉포앞)에 나가보니 마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하얗게 이는 물살 사이로 앞으로 수그리고 앉아있는 미륵석불을 발견해 모셔왔다”고 말했다. 미륵불을 인흥리 산기슭에 작은 건물을 지어 모셨는데, 예전부터 자손을 보고자 기도해 소원을 성취한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던 무렵에는 하루는 시아버지의 꿈에 미륵할머니가 현몽해 “못된 놈들이 나를 엎어트렸으니 빨리 와서 일으켜 세우라”고 해서 부랴부랴 가보니, 문짝은 죄다 뜯어져 부서졌고, 석불이 엎어져 있었다. 일본인들이 물러나면서 석불을 훼손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석불의 왼쪽 팔부분에 금이 갔다. 1960년대 말에는 밤에 누가 마차에 싣고 석불을 훔쳐갔다. 그래서 최 할머니가 석불을 찾겠다고 나섰는데 우연히 속초에 들러 처음 들어간 집에서 석불을 발견했다고 한다. 어느 보살이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니 욕심을 내서 자기집 마당에 모셔 놓았던 것이다. 최 할머니는 명절 때면 미륵불 앞에 꼭 메를 떠놓고 제를 올린다. 자손들이 밥 굶지 않고 아무 탈 없이 잘 사는 것도 다 미륵할머니 덕분이라고 한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6년 9월 30일 설악신문 추석특집 기획기사에 실린 외옹치 장승.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좋아요 0 싫어요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전태극의 사진으로 보는 속초 변천<8> / 수복로 40계단 일대(2006년-2020년) (2020-09-28 12:26:56)
양양뉴타운 견인 ㈜리건 의료생활협동조합 설립 ‘주목’ (2020-09-28 12:05:14)
고성 코로나19 두 번째 확진자 ...
연말까지 집 비워야 하는데… “...
10월의 마지막 밤 콘서트
속초·고성 유치원에 손 세정제 ...
속초해수욕장에 ‘사랑 테마’ ...
고성군, 취약계층 노후 조명 LED...
1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 건설 본격화…2027년 완...
한국판 뉴딜사업인 동해북부선 강릉∼제진까지의 단선전철 건...
2
불편함 감수하면서도 ‘교복 착용 지지(57....
3
양양국제공항 모기지 ‘플라이강원’ 존폐 ...
4
양양 여름송이 ‘풍작’…하루 30kg씩 채취...
5
속초해양산업단지~떡밭재 연결도로 내달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