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각종 모임이나 행사, 종교 활동마저도 제한되어 그다지 바쁠 일이 별로 없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살짝 늦잠을 잤는가 싶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거실 책장에 꽂혀있던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일본 작가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이었다. 사다 놓은 지는 꽤 되었는데 좀처럼 손에 잡히지는 않았던 책이었다. 아침식사를 대충 때우고 거실에서 뒹굴며 읽다보니 늦은 점심식사를 할 즈음엔 다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어본 지도 꽤 오랜만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라는 책의 홍보문구가 제법 잘 맞아떨어지는 소설이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퍼즐을 맞춰가는 추리소설의 느낌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이 책의 주된 플롯은 ‘타임슬립(time slip)’이다. ‘타임슬립’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연결된 타임라인을 갖는다. 판타지 및 SF의 클리셰로, 어떤 사람이나 혹은 어떤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질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차용되고 있고 사람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장르라고 볼 수 있다.
불현듯 내가 만약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면 어느 시간으로 가면 좋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연이은 태풍으로 피해를 입게 된 창고건물을 미리 보수해 놓을까? 혹은 로또복권 당첨일로 가서 미리 당첨번호를 알아올까? 아니면 주가가 가장 상한가를 기록하는 주식을 미리 가능한 한 많이 사 놓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게 큰 폐해를 끼쳤던 누군가와의 만남을 아예 차단해 놓을까? 좀 더 나아가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세월호 침몰 사고 같은 대형 참사를 막거나 IMF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짐을 느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인데 뭘’ 이런 생각과 함께 과거가 바뀐다면 현재는 또 그에 합당한 만큼 변화될 것이고, 미래를 예견해서 현재를 준비한다고 해도 미래에는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해서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속초에 내려와서 처음 살게 된 곳이 조양동 S아파트였다. 몇 년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동해바다 전망이 무척이나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바로 앞에 그 전망을 가리는 한 호텔이 지어졌고, 최근에는 그 호텔의 전망을 가리는 아파트며 숙박시설이 길 하나 건너에 또 지어지고 있다. 정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린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긴 한데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일까? 그저 안주하며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한줌 밖에 안 되는 옅은 지식으로, 남루한 글재주로 글을 써오긴 했는데 요즘엔 참 기분이 무겁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도 온몸을 휘감는 신선한 가을 공기도 그 어떤 것도 예년처럼 내 마음을 가볍게 하지 못한다. 요즘엔 모두가 힘이 드니까 어쨌든 웃을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고, 또 누군가를 웃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혹 ‘타임슬립’을 통해 코로나로 인한 작금의 상황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힌트를 미래로 가서 가져올 순 없을까? 아서라. 영화 ‘타임 패러독스’에 나오는 것처럼 과거가 미래를 규정하고, 그 미래가 다시 과거에 영향을 미쳐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모순만 잔뜩 안은 채 돌아올 수 있을 터이니….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