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이 계속되면서 설악권 서민 경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돌아보면 국가 부도의 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11월 이후에 닥쳐온 IMF 외환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악신문>을 통해 짚어보았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12월 3일 구제금융 최종합의안에 서명했다. <설악신문> 1997년 12월 1일자 신문에 IMF 경제위기와 관련한 사설이 실렸다. 사설에서는 “우리나라가 부도사태를 맞아 굴욕적인 IMF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됐다”며, “이 위기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부채를 끌어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재벌의 부실경영과 이를 뒷받침해주고 대가를 받은 ‘썩은 정치’에 있다.”고 했다. 아울러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경제위기를 함께 극복하겠다는 국민적 의지”라며, “자칫 경제위기를 핑계로 새로운 차별과 위화감이 조성된다면 결국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장롱 속에 잠자는 달러 모으기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학생들이 경제살리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12월 6일 속초여고 학생들은 학생회 주관으로 경제살리기 결의대회를 갖고 시가행진을 했다. 학생들은 국산학용품을 애용하고 군것질을 줄여 저축을 생활화할 것을 다짐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절전 및 절수를 생활화해 에너지 절약에 최선을 다할 것을 결의했다.
12월 8일에는 속초시 경제·사회단체가 경제살리기를 결의했다. 속초상공회의소, 속초YMCA 등 단체는 간담회를 갖고 경제살리기운동을 범시민적 운동으로 펼쳐나가기로 결의하고 외화예금운동, 자가용운행자제, 소비절약실천, 1인 1통장 더 갖기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IMF위기에도 불구하고 속초시 불우이웃돕기성금은 더 많이 걷혔다. 12월 17일까지 들어온 성금은 총 2천여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2만원보다 무려 10배 이상 늘었다.
달러 모으기에 자발적으로 나선 업소도 있었다. 속초시 교동 럭키목욕탕 함태준(당시 42세) 씨는 12월 초부터 경제살리기캠페인으로 10원짜리 동전을 지폐로 교환해주고, 1달러를 가져오면 2,500원짜리 목욕권을 교환해 줬다. 당시 10원짜리 동전을 만드는 데 20원이 넘게 들어가기에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잠자는 10원짜리 동전을 모은 것이다. 청학동에 있는 속옷 전문점도 1달러를 가져오면 새 팬티를 한 장 교환해줘 12월 18일까지 150달러를 모았다.
면세유 2배 올라 수산업계 직격탄 맞아
외환위기로 환율이 두 배나 올라 급격한 유가상승으로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았다. 당장 경유가격 인상으로 시내버스 적자폭이 심해져 벽지노선 감축 이야기가 나왔다. 12월 말부터 오징어채낚기어선 80%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정부 수매 오징어가격은 전년도에 비해 30% 가량 떨어지고, 기름값은 현재 드럼당 3만9천원인데, 새해들어 7만원으로 오를 예정이라고 했다. 실제 면세유는 1월 들어 1드럼에 7만9,420원으로 2배 올랐다. 환율파동으로 다방커피와 시내버스요금, 목욕료까지 올라 12월 한 달 사이에 속초시 물가가 2.8% 상승했다.
지역에 큰 업체가 없다보니 대량해고 사태는 없었다. 건설현장 하청업체나 소규모 자영업체에서 수개월 임금체불이 있었고, 자진퇴사도 늘었다. ㈜설악한화리조트는 노사협상을 통해 감원은 하지 않고 시간외 수당과 보너스를 동결하기로 했다.
연말연시 콘도업계도 큰 타격이 없었으나 1월 들어 눈에 띠게 매출이 감소했다. 대명콘도는 하루 평균 작년 대비 150실씩 예약이 줄어들었고, 대영알프스리조트는 중고생 스키캠프 단체예약이 한 건도 없었다. 속초 숙박업계도 평일 투숙율이 20% 떨어졌다. 주요관광지를 찾는 관광객 발길도 끊어졌다. 대포항 횟집들은 수족관을 아예 비워놓은 곳이 많이 늘었다. 가격할인으로 활로를 찾는 업소가 있었다. 장사동 한산횟집은 횟값을 30% 할인판매하는 ‘IMF식단’을 내놓아 4인기준 3만원에서 2만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속초서 10일 만에 금 36억여원 어치 모아
1월 초에는 ㈜부영 부도설이 나돌아 속초 부영 세입자 900여세대가 전세 확정일자를 받으러 법원과 동사무소로 몰려 큰 혼란을 빚기도 했다. 부영 측은 부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1월 양양의 임대아파트가 잇따라 부도를 맞았다. 양양 서문리에 408세대를 짓는 삼신종합건설이 부도가 나서 레미콘, 중기, 철근 납품 지역업체들이 대금결제를 받지 못하는 등 2억원 이상 피해를 입었다. 손양면에 있는 ㈜정화주택 193세대 임대아파트도 1월 21일 부도가 났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신규 건축공사는 사라졌고 일부 공사현장에서도 공사를 멈췄다.
다음해 1월 5일부터 주택은행 속초지점에서 나라사랑 금모으기운동을 시작했는데, 1월 15일까지 열흘간 속초 주민 3,441명이 금 272kg(36억2천여만원 상당)을 내놨다. 고성군 농협에는41kg, 양양군 농협에는 27kg의 금이 모였다.
1월부터 고철모으기운동이 시작되어 속초시에서는 새마을지회와 부녀회, 공무원들이 나서서 3월 중순까지 1,437톤, 1억1,400여만원 어치 고철를 모았다. 속초 일부 동사무소에서는 일주일에 1, 2일 남자직원들이 고철 수거에 동원되느라 일선행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다음해 1월 한국은행 강릉지점 통계에 따르면, 1976년 지점 개업 이래 속초를 비롯한 영북지역 1월 어음부도율이 사상 최대치인 1.58%를 기록했다. 이는 5천만원 이상 고액 부도업체의 통계라 소규모 업체까지 합치면 부도 규모는 더 컸다. 가계수표 부도율은 4% 늘었고, 속초지역 당좌거래 정지 업체도 14개에 달했다.
1998년 5,6월 지역경제 대란설 나돌아
IMF 구제금융 3개월을 맞은 1998년 3월 지역경제는 고금리와 고물가, 경기침체로 휘청거렸다. 관광객은 전년도의 78.7%,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어획량은 전년도의 63%, 어획고는 50% 수준이었다.
4월 말 들어 5,6월 대란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영북지역에서 1월에 217개 사업장이 페업하는 등 월 평균 2백여 사업장이 폐업해 4월 24일까지 772개 사업장이 경영악화로 폐업신고를 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30여 건의 폐업신고가 세무서에 접수됐다. 어음부도율은 1월 1.58%, 2월 1.89%, 3월 1.63%로 고공행진이 이어졌다. 자영업체 매장을 내놓은 곳도 1백여 곳에 달했다. 중앙시장 신상가 지하어시장 172곳 중 45곳이 폐업신고를 했고, 2층 매장 168곳 중 21곳이 가게를 내놨다. 속초 중심상권에서 의류매장 2곳을 운영하던 진아무개씨가 수억원의 사채와 은행빛을 갚지 못해 가족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5,6월이 지역경제 최고의 위기라며 긴급수혈이 없으면 지역상권이 무너질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4월에는 대영알프스리조트, 6월에는 대명콘도 부도가 났다. 그 무렵 고성군 8개 콘도 중 정상적인 경영을 하는 곳은 2곳뿐이었다. 5월에는 교동 협성임대아파트 156세대, 7월에는 삼진종합건설, 11월에는 간성읍에 임대아파트를 지은 삼익건설이 부도를 맞았다.
지역에 처음으로 무료급식소 문 열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1998년 여름 피서철 지역경기는 긴 장마와 폭우, 피서객 감소로 최악을 기록했다. 속초해수욕장 야영장은 1천만원 적자를 기록했고, 고성 송지호 해수욕장 가건물을 음식점으로 운영한 주민은 통장 개설 후 단 한푼도 입금을 못했다. 양양 낙산의 민박도 전년도의 20% 수준에 머물렀다.
그해 가을 영북지역 바닷가 경기도 사상 최악이라고 했으며, 농가들도 계속된 냉해로 벼수확량이 30~80% 감소했다. IMF 위기로 귀향한 사람들은 많지만 쉽게 배를 타지 못했다. 원가절감으로 선원들도 줄이고, 어획도 극히 부진했다.
1998년 7월말 속초시에 구직신청를 낸 주민은 지난해보다 660% 증가한 831명. 그해 4월부터 하루 8시간 일하고 2만~2만5천원을 받는 공공근로사업이 시작되었지만 실업자를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8년 6월 지역에 처음으로 무료급식소가 들어섰다. 6월 1일 영북지역 천주교협의회 7개 본당 사목협의회가 속초 동명동 영금정 입구 부지에 무료급식소 문을 열었다. “밥 한끼의 사랑을 나눕시다”라는 취지로 문을 연 ‘작은형제의 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에 무료로 점심을 제공했다. 하루 평균 3,40명의 실직자와 노인들이 이용했다.
속초시내에 노점상이 급증했다. 1999년 2월 1일자 <설악신문> 보도에 의하면 당시 순수 노점상은 40여 곳으로 단속이 끊기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시내 7번국도에 30미터 간격으로 노점상이 성황을 이뤘다.
2001년 8월 23일 정부는 IMF 구제금융 차입금 195억달러 전액을 상환해 IMF체제 조기종식을 선언했다. 그렇다고 서민들의 피눈물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종식선언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지역은 IMF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7년 12월 15일자 설악신문에 실린 속초여고 학생들 캠페인 모습. 학생들은 시가행진을 벌이며 IMF위기를 맞아 경제살리기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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