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초는 참으로 애환이 많이 깃든 지역으로, 우리나라 최근세사의 역사적 아픔을 온 몸으로 견뎌냈던 곳입니다. 1945년 일본강점기에서 벗어났으나 그와 동시에 다시 북한의 통치를 받아야 했고, 한국전쟁 때엔 국군과 인민군들이 진격과 후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큰 수난을 겪어야 했으며, 다행히 수복되긴 했으나 이후에도 상당 기간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본토박이 주민들이 떠난 빈 공간을, 북녘을 떠나 피난 나온 실향민들이 대신 채우면서 새롭게 형성된 도시가 바로 속초입니다.
우리 속초 인근에는 천년고찰들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데, 건봉사, 낙산사, 신흥사, 영혈사, 진전사, 명주사, 선림원, 오색석사 등이 그것으로, 이곳에 보전되어 오던 많은 문화재들이 한국전쟁 시 폭격과 방화로 대부분 소실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다행히 설악산 신흥사 문화재들은 비교적 온전히 보관되고 있는데, 이영희 교수님을 비롯한 미군과 국군장병, 전몰호국 영령들께서 지켜주신 은공이라 할 것입니다.
이번에 환수되는 영산회상도는 조선후기 영조시대 불교문화의 대표성을 지닌 아주 귀중한 보물로, 어떻게 해서 미국까지 반출되었는지 그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내준 미국 LACMA 관계자들이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영산회상도의 환수를 시작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고향으로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는 2017년 2월, 흰 눈이 설악산과 온누리를 뒤덮던 그 날 발족되었습니다. 눈밭을 헤쳐 가며 불교인, 기독·천주교인, 문화예술, 교육,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수백 명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흥사 영산회상도 환지본처”를 위한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노모께서 “우리의 부처님이 왜 머나먼 미국 땅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야 하느냐”는 호소에 우리 모두 숙연하게 문화재 환수의지를 굳게 다졌음을 상기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이 운동의 큰 촉진제 역할을 하였으니 고마운 인사를 이 자리에서 드립니다.
지난 2019년 6월 조계종 대표단과 함께 미국 LACMA를 방문하여 최종 협상 후 영상회상도를 친견할 때엔 모든 참석자들이 그 장엄함에 크게 놀랐습니다. 눈물로 범벅된 예불을 올리면서, 어떤 분은 부처님의 눈빛에서 귀향을 읽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부처님의 미소를 보았다고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LACMA 마이클 고든 관장에게 2020년 속초 방문을 제시하였고 흔쾌히 승낙도 받았으나, 정작 문화재가 환수된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이들이 방문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성보 신흥사 영상회상도와 시왕도 6점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4점의 시왕도 문화재가 머나먼 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저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기필코 환수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재도 제자리에 있어야만 그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산회상도 환수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왜 안 되는 일을 하느냐?”, “미국은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등 부정적 시각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과 적극적인 노력으로 끝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쾌거를 거두었으니, 이제 그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는 조계종,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신흥사, 강원도, 속초시, 본 위원회가 부단히 노력한 결실임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문화재 환수와 관련하여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지난 8월 28일 미국 LACMA로부터 환수 받은 우리의 성보 문화재가 많은 시민들과 불자들이 보는 앞에서 신흥사로 귀향하였습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속초 각급기관 단체 언론계, 각급학교 동창회, 기업체와 뜻있는 개인들께서 환영의 뜻을 담아 플래카드를 달아주셨고 심지어 인근지역인 인제, 고성, 양양에 계신 분들도 축하의 뜻을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며, 민간단체인 본 위원회가 설악권 주민들과 사부대중의 지극정성 후원에 힘입어 66년 만에 속초시의 보물을 환수하는 데 기여한 만큼 이와 관련한 모든 분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상래
사)속초시 문화재 제자리 찾기 위원회 이사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