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필자는 몸은 더웠지만 마음은 무척 시원했다.
시작은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청원 글에서 시작되었다. 1만3700여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①세금 정책 ②주택 정책 ③감성보다 이성의 정책을 펴라는 주장 ④실리를 중시하는 외교 ⑤인사 정책 ⑥헌법 가치를 지켜달라는 주장 ⑦일신(一新)에 대하여 등 비판 대상을 일곱 갈래로 나눠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조목조목 질타했다. 먼지 같은 39세의 평범한 시민인 조은산은 결론적으로 “정책은 난무하나 결과는 전무해 허망하다”고 끝을 맺었다. 이 청원 글 시무 7조는 통일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 10조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시무(時務)는 당대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일로 사의(事宜)와 비슷한 말이다.
시무 7조가 뜨거운 관심을 받자 림태주 시인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는 글을 올렸다. 림 시인은 ‘시무 7조’ 청원 글에 대해 “문장은 화려하나 부실하고, 충의를 흉내 내나 삿되었다. 언뜻 그럴 듯 했으나 호도하고 있었고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림 시인의 하교가 올라온 지 이틀 만에 조은산은 자신이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에 “백성 1조에 답 한다”는 제하의 글을 올리며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것은 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너의 백성 1조는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며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하여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고 비판했다.
상소문 형태의 ‘시무(時務) 7조’가 화두가 되자 이번에는 자신을 ‘백두 김모’라고 소개한 청원자가 ‘진인 조은산을 탄핵하는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라는 제목의 글을 31일 게시했다. 1880년대 유생들의 상소인 ‘영남만인소’ 형식을 차용한 청원 글로, 겉으로는 현 정부를 비판한 시무 7조의 ‘진인 조은산’을 꼬집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을 에둘러 풍자하고 있다.
필자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박의 글 중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논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 어느 쪽에 더 가 있느냐에 따라 옳은 것도 그른 일이 되고, 그른 일도 올바른 일이 되는 것이 정치의 생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옳고 그름보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생각이 오고 가는 과정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마음이 시원해진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토론의 원탁이 아니라 논쟁의 원탁에 앉아 있었고, 비판과 경청보다는 비난과 일방적 주장을 외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진중권 전 교수는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조은산 씨와 림태주 시인의 설전을 언급하며 “재미있네. 싸움을 이렇게 하면 풍류가 있잖아. 두 분, 수고 하셨어요”라는 짤막한 글을 남겼고,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무 7조는 적절한 풍자를 통해 정부의 약한 고리를 짚어내며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다. 이전까지는 회의감· 좌절감·혐오 등으로 정치 코드가 설명됐으나, 시무 7조는 잠자던 정치적 DNA를 살려냈다”고 평가했다.
그들이 올린 글 전문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며, 필자는 속초의 시무 7조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민원성 관심이 아니라 우리 고장 전체와 더 먼 훗날의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모습을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토론과 비판이 저들처럼 되살아나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