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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출신 최규영 선생 독립유공 포상
지난 광복절 기념식서 애족장 수훈…유족들 참석/양양농민조합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돼 옥고 치러/장녀 최일선 씨 백방 노력…한국전쟁 때 헤어져
등록날짜 [ 2020년08월31일 13시35분 ]
양양 포월리 출신 최규영(1910년~미상, 이명 최동섭) 선생이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최규영 선생의 장녀인 최일선(85) 씨 등 유족은 강원도가 지난 15일 춘천 의암 류인석 기념관에서 개최한 제75주년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최문순 도지사가 수여한 훈장증을 받았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최규영 선생은 1927년 12월 양양군에서 양양농민조합 포월지부 간부로 신사회 건설과 농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돼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공적을 인정받아 애족장을 추서했다.
최규영 선생은 3.1운동 당시 어린 소학교 학생으로 양양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됐으나, 너무 어려 풀려나기도 했다.
최일선 씨는 부친 최규영 선생의 독립유공을 인정받기 위해 8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백방으로 노력했다. 국가기록원에서 부친의 자료를 찾고 강원동부보훈지청을 수차례 방문해 상담했다. 5년 전에 이어 2018년 부친의 독립유공자 신청을 할 때에는 직접 ‘아버지 최규영(최동섭)에 대한 증언’을 써 보훈지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제가 현재 나이 84세, 머지않아 85세가 될 텐데 지하에 가면 신이 있다면 만나서 명예회복 해줬다는 막연한 그 한마디 듣고 싶습니다. 나이 많은 노파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소원합니다.”
최 씨에 따르면 최규영 선생은 원산형무소에서 출소한 후 농사에만 전념했다. 간혹 딸에게 원산형무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던 일을 들려주기도 했다. 최규영 선생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농사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렵다며 양양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최일선 씨를 데리고 원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고등어자반을 만들어 양양에 다니며 팔았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비행기 폭격을 피해 친지 편에 딸을 먼저 양양으로 내려 보냈다. 최일선 씨는 5일간 밤에만 걸어서 양양으로 돌아왔으나, 곧 뒤따라가겠다고 했던 부친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부친은 약속대로 양양으로 돌아오기 위해 원산 갈마역까지 왔다가 폭격을 당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금까지 부친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최일선 씨는 지난 28일 “그동안 오로지 아버님의 명예회복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왔는데, 늦게나마 아버님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정의가 성취된 것에 만족하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최규영 선생의 장녀인 최일선(왼쪽 두 번째) 씨가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부친의 독립유공 훈장증을 받은 뒤 동생들과 최문순 지사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장재환 (semin2748@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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