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로컬이 더욱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해외여행은 축소되고 지역여행이 각광받는다. 지역마다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환경 만들기에 집중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지역 고유의 가치를 어떻게 드러내고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소위 로컬의 재발견이다. 로컬은 건물일 수 있고 길이나 마을, 골목길일 수도 있다. 지역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면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터무니를 발견할 수 있다. 속초에도 무수히 많은 골목길이 있다. 신작로가 닦이기 전부터 살아왔던 주민들의 삶터가 골목길에 있다. 그 골목길은 거주민의 일상과 상업행위가 함께 하면서 매력적인 골목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속초의 골목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찾아보기로 한다. 골목에 위치한 다양한 공간을 인터넷의 정보와 즉석 인터뷰에서 찾아본다. 우연히 발견한 속초의 골목길에서 속초다움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낡은 건물과 신축 건물이 어우러진 골목
골목길을 찾는 첫 번째 여정은 ‘중앙로 82번길‘에서 시작한다. 이 골목은 김진기안경원부터 시작해서 로데오 제1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차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는 제법 넓은 골목이다. <골목길 자본론>을 쓴 모종린 교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골목길은 짧고 촘촘하게 이어져 있으며 낡은 건물과 신축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82번길이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골목은 시내와 청초호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연결되는 곳이다. 만약 칠성조선소와 문우당, 동아서점을 방문한 도보여행자라면 시내까지 가기 위한 재미 중 하나로 이 골목을 선택해도 좋다. 자가용이 있다면 시내 한복판보다 로데오 제1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속초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대로변에서 골목을 바라보았다. 로데오 주차장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거리이다. 골목 안은 3층과 2층, 1층 건물이 특유의 공간리듬을 만들어 주었다. 건물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보는 재미도 준다. 그 중 대로변에 위치한 건물이 제일 높다. 그 건물에는 백반정식 전문인 '수경이네 밥집'이 있다. 김치와 된장찌개 같은 평범한 음식도 있지만 탕탕이육회가 눈에 띈다. 낙지는 속초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산낙지와 한우삼각살을 함께 내어 놓는다고 한다. 1인분 가격이 제법 높지만 재료 자체가 워낙 고가이다. 흔하지 않기에 마니아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간단한 한 끼 식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 백반이라는 단어보다 집밥이라는 단어가 정감 간다.
맞은편으로는 새로운 임대인을 기다리는 건물이 있다. 인터넷 지도를 찾아보니 과거 '신설기계세탁'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세탁소는 주민 주거공간에 하나씩은 있던 생활시설이었다. 그 옆 영일여관 밑에 좁은 골목이 보인다. 들여다보니 촘촘하게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청초호라는 수변공간을 배경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일 테다. 사람 한명 정도가 걸을 수 있지만 직선으로 뻗은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 형성되었기보다 집단으로 이주하여 형성된 곳임을 알 수 있다.
'중앙로 82번길'은 걷는 재미, 보는 재미, 먹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먹는 재미는 '수경이네 밥집', '고구려 삼계탕', '속초바당물회', ‘청학동 사거리’가 있다. ‘고구려 삼계탕’은 이 골목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삼계탕 하나로 오랜 시간 골목을 지키고 있으니 그 맛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청학동 사거리’는 트렌디한 감각의 전집이다. 상호도 그렇지만 옛집을 뉴트로한 감성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모듬전, 육전 등의 전통음식과 젊은 감각의 조화가 좋다. ‘속초바당물회’는 주차장 방향 끝에 위치해 있다. 속초에는 물회 강자가 워낙 많다보니 엉뚱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맛보기 회와 메밀전병, 새우 등의 곁들임 반찬과 정갈한 물회 한상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공간은 음식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니라 문화복합공간으로도 사용된다. 1층 마당은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오픈 문화공간이고, 2층은 코워킹 공간, 3층은 책을 읽거나 소규모 야외 루프탑 모임공간으로 활용한다. 과거 한의원 건물을 지역의 청년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골목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다.
주인장 취향이 반영된 골목 파사드
개인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소품과 패션숍을 볼 수도 있다. ‘포트 메리온&폴란드’는 유럽 수입 주방용품을 전문적으로 선보인다. 세련된 감각의 유럽 도자기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홈스토리’는 레트로한 감각의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한다. 주인장의 패션 감각을 전달하는 소규모 패션숍도 세 곳이 있다. ‘공감’, ‘아리아’, ‘자수 Hey U’는 기존의 건물에 외벽 파사드만 고친 후 자기만의 패션취향을 손님들과 공유하는 곳으로 보였다. 아담하지만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는 상업공간은 그 자체로 골목의 풍경을 만들어 준다.
가장 독특한 외형의 건물도 있다. ‘세리미용실’이다. 2층 창문틀이 독특하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원래 주인이 부엉이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입도 있었는데 바람에 떨어졌다. 과거 술집을 했던 곳이었는데 현재의 주인이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디저트 카페 ‘영희의 달디’와 네일 아트숍 ‘카라네일아트’가 있다. ‘영희의 달디’는 붉은 벽돌의 외벽이 눈에 띈다. 직접 수제로 만든 디저트가 유명한 곳이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쓴 가게로 포토존의 역할까지 한다.
중앙로 82번길은 오래된 건물의 외벽을 주인장의 취향이 반영된 파사드로 조성하여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소위 노포는 없지만 다양한 종류의 상권이 좁은 골목에 밀도를 높여주면서 특유의 골목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골목 전경. 차 두 대가 다닐 수 있는 넒은 폭과 짧은 거리의 골목이다.
속초바당물회가 있는 ‘속초,다’. 청년들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독특한 모습의 ‘세리미용실’
뉴트로 감성의 전집 ‘청학동 사거리’. 그 옆 좁은 골목으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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