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6월 본격적인 여름 피서철을 앞두고 당시 <속초신문>은 ‘우리 고장 맛있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지역 음식점 한 곳씩을 소개하는 연재기획을 시작했다. 과연 30년 전인 1990년대 우리 지역에는 어떤 맛집들이 있었을까? 당시의 기사를 모아서 정리했다.
■순두부,
‘학사평할머니순두부’(1992.6.22.)
근래 속초 미시령 초입 학사평마을에 순두부 집들이 하나 둘 생겨 순두부촌으로 유명해졌다. 순두부 음식점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원조집이 ‘학사평 할머니 순두부집’. 26년 전 김영애(74세) 할머니가 영금정 등대 아래서 한 두초롱 길어온 바닷물로 소량의 모두부와 순두부를 만들면서 처음에는 주위 부대의 군인들에게만 조금씩 팔았으나 1980년초 명성콘도가 마을에 들어서면서 현장인부들을 통해 알려졌고 미시령 개통 후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고객은 대부분 서울손님으로 하루에 2백~2백50그릇 팔린다. 콩은 국산콩을 쓴다. 순두부는 양념간장과 함께 나오고 비지는 된장을 풀어 찌개로 나온다. 순두부 특유의 담백함이 일품이며 조미료를 적게 써서 고유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함흥냉면, ‘함흥냉면옥’(1992.6.29.)
속초 금호동 함흥냉면옥은 40년을 냉면만 만들어온 정통 함흥식 냉면집이다. 함흥 출신의 고 이섭봉옹이 현재의 강원은행 맞은편에 개업한 이래 두세 번 옮겨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은 지 7년째 된다고 한다. 지역은 물론 전국에 널리 알려져 말 그대로 함흥냉면의 맛을 이어온 집으로 유명하다.
면은 제주도산 감자전분과 고구마전분을 사용하며, 좋은 재료를 써서 많은 정성을 들여 육수를 만든다. 사골과 쇠고기사태를 고아 만든 육수가 맛의 비결이다. 고명으로 얹는 가자미회는 싱싱한 가자미를 양념과 함께 2,3일 재워서 만든다. 평일 5백여명, 여름철에는 1천여명의 단골들이 찾는다.
■토종닭 백숙, ‘닭잔치집’ (1992.7.6.)
노학동 한옥마을 닭잔치집은 집뒷뜰서 직접 방사한 토종닭으로 요리한 닭백숙으로 유명하다. 인공사료를 먹이지 않고 풀밭에서 직접 길러 고기맛이 약간 질긴 듯 하나 닭장 속에서 사료만 먹고 자란 닭과는 맛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백숙은 토종닭을 다양한 한약재와 양념을 넣어 느끼한 맛이 없다. 기름기(지방)를 제거한 후 찹쌀을 넣어 끓인 닭죽이 나온다. 백숙을 만들 때 나오는 수증기를 이용해 쪄낸 ‘찐밥’도 별미이다.
■오징어순대, ‘그집’(1992.7.13.)
오징어순대는 속초산 근해오징어로 만든 것으로 산오징어 물회와 함께 오징어요리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오징어를 배를 가르지 않고 속을 빼내 손질해 뱃속에 잘게 간 쇠고기, 야채 이외에도 표고버섯, 찹쌀 등 재료를 섞어 넣어 쪄낸다. 단백하고 오징어 특유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그집’ 대표 신승용(48세)씨는 1985년 생선구이집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오징어순대를 만들어 팔면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징어순대공장에서 하루에 140~160두름을 생산해 전국 유명백화점에도 납품하고 있다.
■뚜거리탕, 양양 ‘월웅식당’(1992.7.20.)
뚜거리탕은 깨끗한 양양 남대천에서 잡히는 민물고기인 뚜거리로 끓인 매운탕으로 여름철 은어와 함께 미식가의 입맛을 돋우는 별미음식이다. 다른 민물고기처럼 비리지 않고 고기맛이 담백하다.
월웅식당은 예로부터 이어온 양양 뚜거리탕의 맛을 그대로 살려낸 집이다. 지역주민들이 잡아온 뚜거리를 잘 손질해 고추장과 된장을 적당히 넣고 파와 마늘, 풋고추 등을 넣고 끓여낸다. 대표 이정옥씨(45세)는 “양양 뚜거리탕의 특출한 맛은 오염되지 않은 남대천 자연과 양양 아낙네들의 토박이 손맛”이라고 했다.
■막국수, 고성 ‘백촌막국수’(1992.7.27.)
토양이 척박한 강원도, 특히 동해안쪽은 생육기간이 빠르고 냉해 등에 강한 메밀을 많이 재배했다. 이 메밀로 고성군 백촌리에서는 옛날부터 결혼이나 회갑 등의 동네잔치에 막국수를 만들어 내놓았다. 무로 담근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수육, 김가루, 깻가루 등 고명을 얹어 먹는다. 백촌막국수(대표 김광호, 55세)는 십수 년 전부터 동네에서 막국수 맛이 좋은 집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4,5년 전에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한번 순메밀 막국수 맛을 본 사람은 꼭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막국수 이외에도 돼지고기에 생강, 파뿌리를 넣어 삶아낸 수육도 유명하다.
■산채비빔밥, 설악산 ‘청운정’(1992.8.3.)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선대로 가다보면 팔각정 모양의 건물에 청운정식당(대표 김충남)이 있다. 공원내 유일하게 식당업허가를 가지고 있는 집으로 15년 동안 산채비빔밥을 만들어 팔아왔다. 외설악쪽은 악산이라 바위가 많아 산나물들이 억세고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내설악쪽 인제, 원통은 물론 흘리까지 가서 산나물을 수집하여 재료로 쓴다. 곰취, 고비, 얼러지, 표고버섯, 도라지 등을 다듬어 데쳐낸다. 밑반찬으로 물김치와 계절음식 몇 가지가 나오는데, 여름철에는 미역냉국, 겨울에는 미역국이 나온다.
■산채한정식, ‘정화가든’(1992.8.17.)
대포항이 바라보이는 오른편 언덕에 있는 정화가든은 개업 11주년을 맞았다. 설악산 주변에서 채취한 산채와 갈비찜, 생선구이, 새우튀김, 쇠고기육회, 더덕구이, 오징어불고기, 보쌈, 계절에 따라 잡히는 산오징어, 참가자미 등 30여가지 음식이 한정식에 나온다. 밥은 양양 오색에서 길어온 약수로 지어 푸른색을 띤다. 전통한옥 분위기로 상차림이 옛날 양반집 큰 잔치상을 떠올리게 한다.
■오징어물회, ‘삼해장횟집’(1992. 8.24)
오징어물회는 뱃사람들의 속풀이용으로 전해 오다가 지금은 오징어순대와 함께 대표적인 오징어요리가 되었다. 삼해장횟집(대표 김영복)은 중앙동 제일극장 뒤편에서 10년 넘게 횟집을 하다가 5,6년 전에 전망좋은 대포항 항구 안쪽에 자리잡았다.
잘게 썬 산오징어에 싱싱한 야채를 얹고 초고추장을 넣고 물에 말아내면 얼큰하고 상큼한 물회가 된다. 초고추장은 안주인인 김복녀(41세)씨가 마늘, 생강즙,양파즙 등을 넣어 손수 만든다. 물회가 나오기 전에 전복이나 흰살 생선을 다져 끓인 생선죽이 나오며, 밑반찬으로 게장과 젓갈도 나온다.
■궁중전골, ‘황해식당’(1992.8.31.)
중앙동 황해식당(대표 조영대)은 주인은 두어 번 바뀌었지만 한곳에서 35년간 전골을 만들어왔다. 황해식당 궁중전골은 말 그대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 전골에는 홍합을 비롯해 4종의 조개를 비롯해 흰살생선, 새우, 게, 생선알 등 15가지 이상의 해산물이 주로 들어간다. 그리고 쇠고기, 두부튀김에 쑥갓, 미나리 등의 야채를 곁들인다. 푹 고아낸 사골육수를 부어 끓여가면서 먹는다. 꽃게로 만든 게장도 일품이다. 황해식당 궁중전골은 30년 가까이 주방을 지켜온 김영근씨(47세)의 손맛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속초신문>에 소개된 맛집 10곳 중에는 김영애할머니순두부로 이름을 바꾼 학사평할머니순두부와 함흥냉면옥, 월웅식당, 백촌막국수가 아직도 성업 중이다. 오징어순대와 오징어물회 맛집은 지금 사라졌지만, 두 음식은 속초의 대표 관광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1994년 3월 14일자 신문에는 지역특산물로 오징어순대를 만드는 곳으로 한산횟집(대표 이규복)과 함께 속초 동성식품과 양양 성모식품산업이 거론되었다. 황해식당 궁중전골을 개발한 김영근씨는 1993년 5월 3일자 <설악신문> ‘내가 최고’”라는 코너에 소개되기도 했다. 함흥냉면옥은 1996년 4월 8일자 <설악신문>에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상호의 식당으로 소개됐다.
1995년 10월 23일자 <설악신문>에는 당시 인기가 있던 회국수를 소개했다. 생미역과 가자미를 고추장에 버무려 얹은 회국수와 진한 멸치국물 맛이 일품이다. 속초 회국수 최정자(당시 53세)씨는 1980년부터 부둣가에서 회국수를 팔기 시작했다. 속초회국수는 몇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6년 4월 8일자 설악신문에 실린 함흥냉면옥과 창업주 고 이섭봉옹의 사진. 사이클선수 출신이었던 이씨가 1960년대 무렵 쌀가마구니를 메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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