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업체에서 지하수 판 소식을 듣고 왔다. 정수기 설치비가 5000만원이라며 물을 받아가 검사를 해 보고 연락이 왔다. “5000만원 벌으셨습니다.” 물이 좋아 정수기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2002년 여름 태풍 루사가 몰아쳤다. 지하에 있는 기계실은 물이 차 모든 기계가 망가졌다. 뜯어 낸 모터만 20여개 버너가 2대. 기름 탱크에서 새어나온 기름이 온 지하실을 기름 범벅으로 만들어 놓았다. 밤낮으로 복구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복구를 마치고 주 고객들이 사업을 하는 먹거리촌을 가보았다. 먹거리촌은 엉망진창 말 그대로 쑥대밭이었다. 온갖 쓰레기가 집집을 덮었고 집집마다 내어다 놓은 식기며, 온갖 집기가 가관도 아니었다. 나는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자치센터)에 목욕 무료 쿠폰을 가져다놓고 실의에 빠져 고생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 그분들은 그때 나누었던 정으로 더욱 견고해진 두터운 고객층이 되었다.
다음 해에도 또 다른 매서운 태풍 매미가 지나가고 태풍으로 인해 부서진 도로, 하천 등 대대적인 복구공사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지역경제가 되살아나며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목욕협회 속초지부장이었던 나는 사업은 아내에게 맡기고 협회 일에 열중했다. 36개 목욕탕의 권리와 이익을 위하여 서울 중앙회로 관공서로 동분서주하고 다녔다.
목욕탕은 관련된 기관이 왜 그렇게 많은지. 대기오염을 담당하는 환경과, 시민의 건강과 위생을 담당하는 위생과, 유류를 취급하기에 위험물 관리자를 담당하는 소방서, 상수도와 오폐수를 담당하는 상하수도과, 욕조수를 관리하는 보건소….
이리 저리 뛰어 다닌 덕에 협회는 견고해졌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며 영업할 수가 있었다.
단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각각이던 협회는 교대로 휴일제를 정해 쉬는 날이 생겼고, 목욕요금도 제살깎기식 덤핑이 사라지고 안정된 요금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보건복지부장관 상을 받게 되었다. 상을 받기 위해 목욕협회 총회가 열리는 제주도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2박 3일간 여행하며 머물게 되었다. 아내는 내 몫까지 새벽부터 밤늦도록 식사할 시간도 없이 카운터에 앉아 있어야 했다. 당당하게 속초로 올라온 나는 의기양양해 있었다. 고생한 아내에게 위로 한마디 없이 장관상 받은 것만 자랑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잘못된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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