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은 제조업이 약한 편이고 창업자들은 요식업이나 숙박 시설, 카페 등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동해형씨’는 특별하며 사람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동해형씨는 반려동물 간식 제조업체이다. 작년 가을에 고성 공현진에 문을 열었고 작년 연말부터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동해형씨는 대구, 연어, 도치, 방어, 송어 등 수산물 반건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동해형씨의 창업자는 올해 서른하나의 김은률 씨이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다년간 콘텐츠 제작업에 종사해와 반려동물 간식 제조와는 거리가 먼 이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선택한 길은 그의 삶에서 생뚱맞은 것이 아니다.
인정받던 건축학도 출신
김은률 대표는 대학에서 잠재력을 인정받던 건축학도였다. 교수 추천으로 각 대학에서 모인 건축학도 설계 대회에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건축학도로서 학업에 집중하기보다 부모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인테리어와 편집디자인, 콘텐츠 제작 등의 일을 하며 일찍부터 돈을 벌었다. 그는 이들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포스터 등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 덕분에 그는 대학 재학 중에 콘텐츠 제작대행사에 영입돼 회사 운영에 참여하며 영상 등 콘텐츠 제작 실무를 담당했다.
그는 그 시절 전국을 누비며 상품의 온라인 판매를 위한 상업용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모가 운영하는 횟집과 연관해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일찍부터 부모의 부담을 덜어드리려는 마음이 컸던 그는 채소나 육류는 온라인에서 유통량이 증가하는 데 비해 수산물은 증가 폭이 크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사업은 초기에 성공적인 길을 걷었지만, 청년 사업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은 잘 풀리지 않고 좌초했고 그는 큰 좌절감에 휩싸인 채로 고향 고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고향에서 단 몇 주 만에 금세 심리적으로 회복했다. 고향 고성은 그에게 항상 든든한 안식처였다.
고향에서 사업 아이템 착안
어린 시절 그는 노래를 잘해서 여러 대회에서 수상했다. 부모와 마을주민들은 버스를 빌려서 그를 응원하러 갈 정도로 뜨거운 애정을 보였다. 주민들은 언제나 그를 살갑게 대해 그는 항상 지역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김 대표는 새로운 사업으로 고향의 자원을 활용하고 지역주민에게도 유익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택했다.
김 대표는 수산물을 가공, 판매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민했다. 수산물은 채소나 육류처럼 신선도 유지가 중요한데, 비린내가 나 온라인 판매는 쉽지 않다. 원활한 온라인 판매를 위해서는 비린내를 해결해야 하지만 김 대표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김 대표는 비린내가 나는 것에 개의치 않는 대상을 찾았는데, 바로 반려동물이다. 개나 고양이는 생선의 비린내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는 요소이다.
김 대표가 반려동물 수산물 간식 제조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부모의 반대가 컸다. “왜 비린내 나는 일을 하려고 하냐”며 김 대표를 설득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사업의 성공에 자신이 있었고 부모에게 사업 프레젠테이션도 하며 안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제는 수산물 유통에 종사하는 부모가 그의 사업을 신뢰하며 원재료 수급을 담당하고 있다.
김 대표는 수입산이 아닌 지역 수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며 가공 과정에서 원형을 유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려동물 간식 선택 시 사람들이 안전성을 중시한다는 점에 착안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기존 반려동물 간식은 큐브 등의 형태로 돼 있어 원재료와 안전성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데 ‘동해형씨’의 제품은 수산물 원형을 살려 건조한 특징을 지닌다. 김 대표는 제품의 포장에서도 원재료의 모양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포장은 투명 비닐이며 마치 한국화처럼 여백이 크고 글자가 들어간 영역은 작게 배치해 놨다.
아직 사업 초기라 제품 생산량은 많지 않다. 제조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은 생선 가공을 담당하며 건조와 포장, 발송 과정은 거의 김 대표 혼자서 한다. 아직은 사업 초기 단계라 매출이 크지 않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 김 대표는 미래를 낙관하며 시설 등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쉽지 않지만, 고성군의 창업 지원은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민 함께하는 회사 만들 터”
김 대표의 노력은 요즘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온라인 판매 후기에서는 후한 평점과 긍정적인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 관심을 드러낸 유명인들도 있다. 애프터스쿨 출신 리지는 제품이 좋다면서 따로 연락해왔고, 방배동 반려동물 제품 판매장 입점에도 도움을 줬다. 메이저리거 최지만 선수도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동해형씨’ 제품만 찾는다면서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요즘 제품의 규격화와 다양화를 위해 고심과 노력 중이다.
“수제 간식이라 제품의 질이 약간씩 차이가 나도 고객들이 이해해주시는 편이지만 앞으로 더욱 규격화된 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본이 있어도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다양한 수산물 가공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고성에서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크다.
“지역이 잘되려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업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지역에서 사랑과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여기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이웃인 고성의 1차 생산자들이 좀 더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성은 관광이 잘되는 것도 좋지만 좋은 기업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동해형씨가 잘 되면 어민과 지역민도 잘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역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반려동물 간식 제조업체 ‘동해형씨’의 김은률 대표.
동해형씨의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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