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환철 옹의 주 작전지역은 통천 앞바다의 난도였다. 강 옹은 교량 폭파, 통신선 절단, 인민군 해안 초소 공격, 민간인 납치 및 정보 수집, 교란 작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은 힘들었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형님들과 교전을 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가족과 총부리를 겨눴지요.”
강 옹은 이렇게 얘기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에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지 않고 북한에 남을 수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 다리는 복귀하는 다른 이들을 향해 움직였고 어느새 미군 대열에 합류해 있었어요.”
강 옹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안 넘어간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군에 오래 있으면서 자식 교육 잘했지, 연금에 보훈급여까지 받고 있으니…….”
월남전도 참전…준위로 제대
강 옹은 휴전 이후 1953년 9월에 미군 훈장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상부의 명령으로 미군 하사에서 국군 20사단 60연대 통신하사로 옮겼다. 그리고 84년에 준위로 제대하기까지 월남전에도 다녀오는 등 30년 넘게 군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가치관도 변했다.
“북한은 말이 안 통해. 김정은 그놈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몰라.”
그렇다고 해서 김 옹이 북에 대한 강경책을 원하진 않는다. 강 옹은 “북에 대한 강경 대응보다 남북 간 화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법은 달리 없어요. 남북관계가 잘 풀려야 하고 통일은 반드시 이룩해야 해요. 북을 압박하면 안 되고 지원하면서 체제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강 옹은 약간 모순된 주장을 했다.
“국방예산을 삭감하면 안 돼. 장군 수를 줄이려는 것도 문제야.”
그러나 강 옹은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전쟁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전투 시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나요. 총알이 날아가면서 ‘핑’ 소리가 나면 그냥 지나가는 거고 ‘픽’ 소리가 나면 누군가 총을 맞고 쓰러졌죠. 그 ‘픽’ 소리가 너무 끔찍했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요. 전쟁은 체험해서는 안 되는 거지.”
강 옹은 “북한이 변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어려울 거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들을 재회할 가능성에도 매우 회의적이었다. 연령을 고려하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 옹은 매우 강한 어조로 부정적인 말을 이어갔다.
“형님들에 대해서는 단념했어요. 단념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전투가 너무 치열했기에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어요.”
덕담식으로 강 옹에게 “형님들을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하자, 강 옹은 ‘허허’ 하고 웃다가 “꿈도 꾸지 말아야죠”라고 답했다. 강 옹의 이런 반응은 세월 속에 거듭 좌절해온 결과일 것이다.
노옹의 삶에 새겨진 아이러니
강 옹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한국전쟁 훈장을 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강 옹은 미군으로서 미국의 훈장은 받았어도 대한민국의 훈장은 받지 못했다. 이는 강 옹이 군 복무 중 임지를 옮겨 다니며 관련 자료를 잃어버린 결과다. 그는 미군 훈장도 분실했다. 그래서 입증이 쉽지 않아 대한민국의 훈장을 받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러나 강 옹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 북한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북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통일을 추구하자고 말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북한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 같다”고 한숨을 짓는 모습은 그저 모순적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처한 복잡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지주였으나 소작농을 배려하고자 했던 조부, 소작농과 함께 일하며 시집살이에 고통받던 모친,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그의 큰형, 조국 통일을 꿈꾸며 인민군이 된 그의 셋째 형, 인민군이 되고자 했으나 미군이 된 강환철 옹.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도도히 흐르는 역사는 극적인 이야기와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한 집안과 한 남자에게 깊이 새겨져 있다. 노옹의 이야기는 적과 아군을 선명하게 나누고 서로에게 적개심을 품게 만드는 이야기와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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