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상봉부터 동명항서 금강산으로 출발
2000년부터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은 3차까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금강산으로 상봉장소를 바꾼 4차 이산가족 상봉은 14개월 만인 2002년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이뤄졌다. 이때 속초 영랑동 주옥희(78세)씨와 고성 거진읍 조동일(여, 62세)씨가 속초 동명항에서 현대 설봉호를 타고 금강산에 가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돌아왔다.
함경북도 나남시에서 태어나 자란 주옥희씨는 20살에 고향 나남에서 결혼해 살다가 22살 때 만주 안산으로 갔고 해방 후 인천으로 귀국했다. 북에 가족 생사확인을 한 결과 부모는 이미 돌아가시고 여동생 주옥돌(73세)씨와 조카 김영호(62세)씨만 생존이 확인되어 금강산에서 상봉했다.
고성 거진읍 조동일씨는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에서 살다가 전쟁 중에 북으로 간 오빠 조동원(68세)씨가 남쪽 가족과 만나고 싶다고 신청해와 동생 3명과 조카 2명이 함께 상봉길에 올랐다.
2002년 5월 6일자 <설악신문>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에 따라 속초 동명항에서 설봉호 입출항과 관련한 분위기를 특집기사로 다뤘으며, 아직도 마을에서 상봉자를 내지 못한 아바이마을 실향민의 실망도 함께 다뤘다.
5차 이산가족상봉은 2002년 9월 13일부터 18일까지 금강산에서 이뤄졌는데, 속초에서 김기화씨, 지인수씨, 전제영씨, 3명이 북에 있는 가족과 만났다.
속초 청호동 김기화(64세)씨는 오빠 김순경(69세)씨의 상봉신청으로 8살 때 헤어진 오빠를 55년 만에 만났다. 김씨는 금강산 출발에 앞서 <설악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중 강릉에서 헤어진 오빠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다고 해서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속초 조양동 지인수(80세)씨는 전쟁 중 평양에서 헤어진 여동생 지의자(72세)씨, 지네자(67세)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지씨는 평북 영변군 독산면 마을이 폭격으로 초토화되자 자매를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는데, 1백80리 길을 걸어 도착한 평양에서 인도교와 철교가 모두 끊어져 대동강을 건널 수 없게 되어 동생들을 남겨두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설악동 전제영(76세)씨도 동생 전덕영(63세)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102세 고성 어순덕씨, 50대 딸 상봉
7차 이산가족 상봉은 2003년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금강산에서 이뤄졌다. 이때는 속초·양양·고성에서 유일하게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의 어순덕(여, 102세)씨가 유일하게 상봉자로 선정됐다. 상봉자 중 최고령자인 어씨는 6월 27일 금강산에 가서 북한에 있는 딸 정완옥(56세)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인정리가 고향인 어씨는 전쟁 중에 남편, 딸과 함께 북으로 피난을 갔다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졌다. 어씨는 10년간 백내장을 앓아 시력도 안 좋고 워낙 고령이라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불가능해 방북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어씨는 금강산에 가서는 빨리 딸을 만나러 가자며 도우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앞장 서 걸어갔다고 당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2년 후인 2005년 11차 이산가족 상봉소식이 다시 <설악신문>에 실렸다. 8월 26일부터 31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 상봉행사에서 고성군 토성면 전숙자(73세)씨가 큰오빠 전상갑(78세)씨를 만났다. 전숙자씨는 4,5년 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적십자를 통해 북에 살고 있는 큰오빠가 찾고 있다는 소식을 받게 됐다. 전씨의 오빠 전상갑씨는 전쟁이 나기 3일 전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원산에 있는 고모집에 갔다가 전쟁이 터지면서 생이별을 하게 됐다. 전씨 가족은 큰 아들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6남매를 데리고 간성읍 동호리에서 경북 안동까지 피난길에 나섰다. 원산 간 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전씨의 부모는 살던 집에 다시 들어와 살았지만 끝내 아들 소식을 못 듣고 30년 전에 모두 사망했다.
양양군 현남면 포매리에 사는 김성기(87세)씨도 이때 조카 김남각씨를 상봉했다. 김남각씨는 김성기씨 큰형의 장남으로 한국전쟁 당시 사범학교를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참전해 가족과 헤어졌다. 당시 상봉에서는 김성기씨와 함께 남한에 살고 있는 김남각씨 친동생 4명도 함께 맏형 김남각씨를 만났다.
2005년 12월 8,9일 3차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진행됐다. 영북지역에서는 속초시 조양동 김철한씨와 고성군 토성면 원순자씨, 박천석씨가 화상으로 헤어진 가족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17차 이산가족 상봉은 금강산에서 2009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이뤄졌다. 이때는 2008년 7월 11일 발생한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상태였다. 속초시의회는 상봉을 앞둔 9월 8일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이 상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문을 채택해 통일부장관과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보냈다. 시의회는 건의문에서 “그동안 16차례에 걸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왔지만, 아바이마을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명도 북에 생존해 있는 가족을 상봉하지 못해 허탈과 상실감에 휩싸여 있다”고 지적했다.
17차 상봉에서는 황해도 은율군 이도면 서해가 고향인 속초 조양동 석찬익씨(89세)가 아들 석하준(61세)씨와 손자 석광일(34세)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석씨는 전쟁 전인 1948년 부인과 당시 두 살 아들을 남겨두고 혼자 월남했다. 석씨는 부인도 만날 것을 고대했지만 부인 정태연씨는 몸이 아파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다. 아들 하준씨는 빛바랜 부모의 결혼사진과 어머니 회갑연 사진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줬지만, 석씨는 시력이 흐릿해 사진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청호동 실향민, 2010년 첫 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지 만 10년만인 2010년 11월 3일 드디어 청호동 실향민의 첫 가족상봉이 이뤄졌다.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18차 이산가족상봉에서 청호동 김동율(82세)씨가 딸 김옥화(64세)씨와 외손자를 상봉했다. 함남 영흥군이 고향인 김씨는 전쟁 1년 전에 부인과 딸을 놔두고 부친 소유의 선박으로 월남했다.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김동율씨의 인터뷰가 2010년 11월 15일자 <설악신문>에 실렸다.
상봉장에 나온 딸 김옥화씨는 아버지를 만나고는 “아버지가 살아있어 기적 같다”며 한동안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으며, 김동율씨는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았느냐”고 딸을 위로했다. 김씨는 북한의 추운 날씨를 고려해 방한복과 내복 등을 딸과 외손자에게 전달했다. 김씨는 아내가 17년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슴이 미어졌다.
이 상봉행사에서 속초시 교동 강인자씨(여, 91세)가 강원도내 최고령자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났다.
2010년 들어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19차 이산가족상봉은 4년만인 2014년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렸다. 이 상봉에서 양양군 양양읍 월리 김영환(90세)씨가 부인 김명옥(87세)씨와 큰아들 김대성(66세)씨를 만났다. 평북 안주가 고향인 김씨는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폭격을 피해 남하하다가, 그만 3살 아들을 업고 있는 아내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헤어졌다. 부인 김명옥씨는 북에서 재혼도 하지 않고 시아버지를 모시고 혼자 자식들을 키워 증손자까지 봤다. 부인은 폭격으로 남편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만 믿고 지금껏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20차 이산가족상봉은 2015년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렸는데, 영북지역에서 모두 3명이 상봉했다.
양양 강현면 용호리 김남모(74세)씨가 전쟁 중에 인민군에 나간 큰형 김남진(84세)씨를 만났다. 큰형 남진씨는 남쪽의 동생 3형제를 만나자마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연신 눈물만 흘렸고, 작별할 때 부모님 산소에 올리라고 술 한 병을 동생들에게 쥐어줬다. 속초 박복남(여, 71세)씨는 어머니와 형제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작은 집 고모 아들인 조카를 만났으며, 고성 토성농협장 김명한(59세)씨가 전쟁 중에 학도병으로 나간 이복형 김한식씨를 만났다.
21차 이산가족상봉은 2018년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렸다. 이 상봉에서 양양 물치에 사는 황보해룡씨가 전쟁 전 16세 나이로 원산방직공장에 간 후 소식이 끊긴 누나 리근숙(84세)씨를 만나 돌아가신 모친이 생전에 누이를 애타게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한 속초의 장구봉(82세)씨가 속초 논산리에 살다가 전쟁 중에 헤어진 형 장운봉씨를 만났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02년 4월 28일 4차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속초 동명항에서 금강산으로 떠나는 설봉호를 향해 부두에 나온 환송객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설악신문 2002년 5월 6일 자 1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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