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회사의 디자인 실장이던 김경환 씨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장인이었다. 직원 200명인 회사에서 그의 연봉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리고 그는 회사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 2017년 어느 날 퇴사하고 서울을 떠나 고성으로 왔다. 서핑숍과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김 씨가 토성면 천진리에 건물을 임대하고 6개월 동안 사업을 준비할 때, 아직 결혼 전이라 예비신부이던 강승희 씨는 이런 예비남편을 이해하고 경제적·정신적으로 지지했다.
창업의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경환·강승희 부부는 연애 시절, 두 명이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로 서핑을 접했다. 이후 이 두 사람은 양양을 자주 찾으며 서핑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다가 김 씨는 아예 서핑을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서울 소재 독일계 회사에서 일하던 강 씨 역시 이에 동조했다. 두 사람은 ‘직장인은 언젠가 퇴사하고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좀 더 젊은 나이에 자영업을 시작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인테리어, 그리고 시행착오
김 씨는 창업지로 자신이 주로 찾던 양양이 아닌 고성을 선택했다. 양양은 서핑을 즐기기엔 이미 포화상태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조용한 고성으로 왔다. 건물 인테리어는 김 씨와 강 씨가 직접 했다. 김 씨는 퇴사 후 반년 정도 인테리어에 매달렸고 강 씨는 주말이면 퇴근 후 고성으로 와서 작업을 도왔다.
10년 넘게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김 씨는 인테리어에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했다. 하지만 처음에 김 씨가 건물을 빌려서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했을 때 건물주는 혹시나 건물을 망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운 말을 했다고 한다. 반년 동안 개업하지 않고 인테리어가 진행됐으니 당시 건물주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테리어가 완성됐을 때 건물주는 김 씨에게 인테리어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다.
김 씨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사업가보다는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사업에 접근했다. 돈을 많이 벌기보다 멋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2018년 봄, 가게 ‘론존’문을 열던 첫날 김 씨는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개업한 것에 대한 감격보다 가게 문을 열었는데 몇 시간 동안 손님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개업을 준비하는 동안 김 씨는 자신이 장사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거라 상상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달콤한 꿈이 깨졌다.
김 씨는 인테리어에만 너무 공을 들이다가 홍보와 마케팅을 소홀히 한 것을 절감했다. 바쁜 시기인 여름을 넘기고 가을이 돼서야 본격적인 마케팅 준비를 하려는데 인테리어를 문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인테리어 과정이 힘들었기에 인테리어를 사업으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홍보와 마케팅을 소홀히 한 것은 겨울 장사에서 드러났다. 하루에 1~2만원을 버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기도 힘들었다. 각종 공과금과 임대료를 빼고 나면 동절기는 적자의 연속이었다. 결국에는 개업 1년도 안 돼 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작년부터 가게 형평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서서히 대출을 갚아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성군의 창업 지원은 큰 힘이 됐다. 남편 김경환 씨는 고성군의 창업지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마 서울에서 창업했다면 관공서의 지원을 받기 힘들었을 겁니다. 서울에서는 창업 지원을 받는 것도 경쟁이 너무 치열하죠. 저는 ‘어디 가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성군에 고마운 마음이 크네요.”
업무량이 늘었어도 마음은…
김 씨 부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업무량이 늘었고 신경 쓸 일도 많아졌다. 여름 성수기에는 일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로 곯아떨어질 정도로 바쁘다. 하지만 김 씨 부부는 서울의 삶보다는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한다. 지인들에게도 고성에서 창업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런데 아내 강승희 씨의 경우 약간은 복잡한 속마음도 가지고 있다. 강 씨는 얼마 전 서울에서 이전 직장을 찾아 동료들을 만났는데 동료들은 그에게 복직을 권유했다.
“직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여기서는 사업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아요. 항상 계획적으로 살려고 한 제 삶에서 사업은 새로운 경험이고 불안한 마음이 있네요. 그래도 누군가 저에게 서울 직장생활과 이곳의 삶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여기를 택해요. 고성에 와서 마음이 더 여유로워졌어요.”
파도의 굴곡을 넘어
얼마 전부터 사업이 안정을 향해 가면서 김 씨는 기존에 곁가지로 하던 사업의 내실화를 기하며 영역 확장도 준비 중이다. 김 씨는 현재 셔츠 등의 디자인 제품을 제작해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이 분야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으며 이에 더해 온라인 쇼핑몰을 준비 중이다.
김 씨 부부는 서핑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할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블랭크스보드’ 등 주변 서핑숍,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천진서핑잔치’를 연 바 있다. 어르신과 어린이, 군인 등을 위한 서핑 교육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작년에 마을 분들을 대상으로 서핑 교육을 했을 때 이장님도 꽤 잘하셨고 그 덕에 주변 분들에게 관심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런 일들이 즐겁고 보람이 있어요. 사람들은 잘하는 것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남편 김경환 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서핑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서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은 거친 파도의 굴곡에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파도가 세지 않는 날이 많아 서핑하는 사람으로서 애가 탈 때가 많아요. 그러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서핑숍·카페 ‘론존’의 김경환·강승희 부부.
김경환 씨가 디자인한 티셔츠.
천진해변에서 펼쳐지는 ‘론존’의 서핑 강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