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결국 사람이 산다는 것은 저마다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보면 명료하게 삶의 모든 흔적이 나타난다. 모든 사람은 돈으로, 권력으로, 미모로, 지식으로, 재주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며 모래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울린 감동의 흔적은 문신처럼 짙게 새겨진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남고 영혼에 새겨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바람에 실려 빗줄기를 타고 햇살을 따라 떠오르다 사라지겠지만, 사람의 삶의 흔적 그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에 동무들과 모래성을 쌓고 허물고 하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아무리 정성들여 쌓았던 모래성이라도 해가 저물면 그대로 놔둔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하듯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남는 것은 흔적뿐. 오늘 내가 남기는 흔적이 곧 나의 역사이며 동시에 나의 미래다. 훗날 그 흔적이 마땅치 않아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우기 어렵다. 미래의 누군가가 오늘의 내 흔적을 찾아낼지 모른다. 부끄러워서 아무리 감추고 덮고 가리고 지우려 해도 남는 것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이 삶의 흔적이다. 인생은 흔적이며 오늘도 우리는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과연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당장의 일들은 세월 속에 묻혀 사라지겠지만 내가 걸어온 발자국 그것은 내 삶의 기록이며 역사이기에 내 뒤에 오는 내 자식들이 또는 후배들이 그 발자국을 보고 따라 온다. 그렇기에 비틀거리면 안 되고 똑바로 걸어야 한다. 뒤에 오는 자식들과 후배들에게 가끔은 좋은 기억으로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어떤 흔적이든 반드시 남기 마련이므로….
누구나 인생을 다 살고 저승으로 떠나고 나면 크게 두 가지의 흔적이 남게 된다.
첫째는, 그 사람이 살면서 행한 행실이 흔적으로 남는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공명심에 날뛰던 어떤 이는 흉하고 추했던 갖가지 나쁜 행실의 흔적이 남게 되고, 또 어떤 이는 자랑스럽고 고귀했던 좋은 흔적이 남는다. 구한말의 매국노 이완용은 지금까지도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천하고 더러운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조국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졌던 안중근은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아 민족의 영웅이 되어 있다. 둘째로, 사람은 자손을 흔적으로 남긴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오선지로 말하듯 그것이 그들이 남기는 흔적이다. 평범한 삶을 살던 우리는 자손을 흔적으로 남기고 떠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잘된 자손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손도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오던 날, 나는 인적이 없는 눈길을 걸으며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춰보았다. 더 이상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걸어 온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앞을 보았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다시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새로운 발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 이것이 자신의 인생이다. 많이 늦었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리라’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최영걸
속초시사회복지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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